황금횃대 2010. 7. 3. 14:21

 

 

 

어제는 뒷집 민석이네 포도봉지를 싸러 갔지요. 생전 넘의 집 일이라고는 해본 적이 없었는데 올해는 내집 포도봉지를 동네 아지매들 품앗이로 했기 때문에 우리집에 온 사람들의 포도밭에는 다 가서 차례대로 품을 갚아야해요. 이삼일 동안 비를 머금은 하늘은 엄청난 습도를 살포하였고 종일 흘린 됫박 땀을 헹구어 내고 선풍기 앞에 앉았으면 세상에 그 보다 더 깔끔하고 시원한 일이 어디있겠냐는듯 느껴졌습니다.

 

또 어제는 기어이 점심 먹을 때쯤 하늘에 물주머니가 특, 터졌습니다. 장대비가 쏟아지는데 얇은 비닐 우의는 속수무책이예요. 회관 평상에 둘러 앉아 젖은 머리칼을 쓸어 올리며 배달 되어 온 점심을 먹어요. 포도알 솎기 하느라 일군들의 손톱은 풀물이 들어 새까맣습니다. 분도 고모는 외지에서 온 손자놈이 김밥을 싸달래서 자른 김에 밥만 한 숟갈씩 떠서 돌돌 말아 얹어 두었더니 오며가며 접시에 김밤을 몇개는 주워먹었는데, 내 손(할머니)톱을 보더니 눈이 똥그래지면서 "할무니, 나 김밥 안 묵을래"하더랍니다. 손톱이 쌔까마니 그게 때가 낀 것인 줄 알고....그렇게 깔끔떠는 손자녀석도 알고보면 흙물, 풀물 들여가며 농사 지은 것들을 지에비가 바리바리 싸가지고 가는지는 아직 모르겠지요.

 

봉지를 밭 면적의 1/2만싸고 날이 저물었어요. 시부모님 계신다고 나는 여섯시 되면 가라고 밭에서 밀어냅니다. 다른 형님들은 시간 넘어도 조금 더 싸주고 옵니다. 혼자 비닐 옷을 입고 터덜터덜 농로 길을 걸어내려와요. 산천은 여전히 물을 함뿍 머금고 금방이라도 이불 호청 다림질 할 때 물 뿜어 대던 울엄마 입처럼 볼따구니가 터질 듯 해요.

 

고속도로를 지나는 굴다리를 툭툭 동멩이를 차면서 지나와 굴 밖 동네 입구에 오니 같이 봉지 싼 쌍둥이 형님 집 담배락에 꽃이 피었어요. 키가 크고 핫핑크색 짜잘한 꽃을 매달고.

꽃대는 몰아친 푹우에 허리가 휘었어요. 내 발걸음도 지쳐 무겁기가 그지 없는데 그 꽃도 꽃머리가 무거운 듯 쓰러져 있습니다. 이왕에 철벅거리는 몸을 나도 굽혀 꽃을 일으켜 세워 담벼락에 기대 놓아요. 내가 포도밭에서 일하다 쉴 때, 포도나무에 조금이라도 등짝 붙이고 기대면 편하거등요.

 

강남에서 떡집을 하신다구요. 내 아는 언니 신숙희도 진주여인인데 그 언니도 못하는 음식이 없습네다. 진주여인들은 그렇게 솜씨가 좋으신가 봅니다. 숙제를 받고 [참 잘했어요 ★★★★★] 도장을 꽝, 찍어드립니다. 고맙습니다.

 

                                                                                                              2010년 7월 3일   전상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