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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오는 아침

황금횃대 2010. 8. 10. 10:07

태풍영향으로 새벽부터

심심촌빨날리는 이동네에도 비가 쏟아진다

어제 저녁에는 논둑이 무너져 아들과 아바이는 모기에게 물어 뜯기며 논둑을 고쳤다.

어설픈 농사꾼이 일 좀 하려면

말뚝박는 오함마 자루가 뚝 부러지고

그거 파내고 새 자루 박느라고 온갖 연장이 동원되었다.

송곳에 일자 드라이버...그래도 안 되서 리놀륨판 파내는 내 조각도까지 동원이 되었다.

땀을 철철 흘리며 부러져 박힌 자루는 파냈지만 시간이 없어

결국은 분도고모네가서 쇠망치를 빌려와서 말뚝을 박았다.

곤죽이 된 논흙을 퍼올리는데 아빠가 땀을 너무 많이 흘려 쓰러지겠더라나?

보리껍데기같은 아들놈이 "아빠 쓰러지겠어 조금 쉬어 내가 할께.."

맨날 컴퓨터 게임만 한다고 씨팔조팔 한 소리 하던 에비 고스방은 감동의 도가니탕이다.

아들에게 개흙 퍼 올리는걸 맡겨놓고 잠시 땀을 식히며

내일 밤은 녀석과 김천가서 영화나 한 편 볼까 생각도 했을거이다.

 

장대비가 쏟아진다.

이런 비가 아침부터 쏟아지면 촌구석사람은 갈등없이 하루를 시작한다.

그저 삿갓에 도롱이쓰고 나가

물꼬를 장화 뒤축으로 콱,콱 밟아 시원하게 틔어주고

논물이 물꼬를 따라 와와 쏟아지는걸 잠시 점검하고는

눈을 들어 퍼렇게 퍼렇게 자라나는 벼를 사랑스런 눈길로 쓰윽 훑어주는 걸로 족하다.

 

비 설거지 끝낸 마당에 들어서 먹은 맘 없이 삐뜰어진 우산대나 똑바로 꽂아 주는 시늉을 하고

벗어놓은 장화를 처마 밑으로 가지런히 들여놓고는 뜰팡에 무릎 세우고 앉아 비 구경을 한다.

여름이면 자주 구경하는 비지만, 이렇게 시원하게 쏟아지면 이런저런 근심도 씻어내며

가심패기 한 구석에서 그윽하게 올라오는 트림을 뱉어낸다.

 

하늘은 천근의 무게로 내려 앉아 이제 월류봉 7부능선까지 내려왔다.

구름과 하늘의 경계가 두루뭉술해졌다

아랫채 양철지붕 골들이 급하게 제 시스템을 가동하여

낙숫물을 숨차게 떨어트린다. 세상에 그저 되는 것은 없어라.

 

점심 때는 경로당에서 할무이들과 감자수제비나 끓여 먹으며

한 때를 떼워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