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타작
늦은 콩타작을 하였다. 콩 심을 때 심정으로 가꿨다면 지금 몇 가마니의 콩을 주워 담을텐데 농사일도 사람 사는 일도 결심을 행동이 따라가지 못한다. 콩 순을 꽃 필때 확 질러버리는 바람에 늦게 다시 핀 콩꽃이 제대로 여물지 못했다. 날씨탓으로 돌린다.
비가 많이 와서 약을 제때 못 쳐줘서 그래. 노린재가 살판이 났더만 콩즙 빨아 먹는다고. 눈을 뻐히 뜨고 당했다는 말이 저절로 나왔다. 그 많은 노린재를 잡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마당에 낡은 멍석을 깔아 놓고 도리깨질을 한다. 플라스틱 도리깨 날이 훼창훼장 소릴 내며 콩꼬투리를 모질게 두드린다. 첨 시집 와서는 쇠철사로 된 도리깨 날로 콩타작을 했다. 낡은 도리깨 손잡이와 쇠도리깨를 이은 이음매 긴볼트에서 삐그덕 소리가 매번 났다. 십수년을 써왔을 손자욱으로 닳아 반들반들 매끄라운 나무자루를 물기가 걷힌 손바닥으로 잡고 도리깨질을 하면 서로의 표면이 서로를 밀어내는 느낌이 났다. 그럼 손바닥에다 침을 퇘` 뱉어 손바닥을 꼽꼽하게 만들어 도리깨질을 했다. 처음 할 때는 도리깨가 사람한테 달라 드는데 몇 년하면 그것도 이력이 난다. 도리깨는 허공에서 한번 상모돌리듯 핑그르르 제 날을 돌려서 세상으로 내려온다. 내리 칠 때 나는 어금니를 옹실 깨문다. 그 누구에 대한 분노도 아니고, 그렇다고 콩 꼬투리가 잘 터지라고 그러는 것도 아니다. 첨부터 도리깨를 들었을 때 입력된 프로그램처럼 나는 온 힘을 실어 도리깨를 내리친다. 그러면서 생각한다. 나는 무엇을 용서 못해 이렇듯 죽을 힘을 쏟아 붓는가..
도리깨로 일차 콩타작이 끝났다. 그래도 살아남은 콩꼬투리가 있다. 볕이 드는 처마밑에 나란히 세워둔다. 마르면 저절로 비틀려 콩이 튈것이다. 그 때 주워담지.
겨울을 향해 성큼성큼 발걸음을 옮기는 태양의 움직임은 두껍고 긴 그림자를 제가 걸어간 만큼 깔아 놓는다. 쉽사리 제껴지지 않는 차가운 그림자.
종일 풀썩이는 먼지와 씨름하다가 어지간히 일을 끝내고 멍석을 말아 놓고, 콩다라이는 아랫채 쪽마루 우에 얹어 놓는다. 그냥 얹어 놓는게 아니고 다라이를 쿵` 소리나게 집어 던지듯 올려 놓는다. 내 하루의 삶이 먼지나게 메캐했다는 의식적 반항이다. 나이롱 자루 바가지를 들고 도리깨질에 놀라 천리나 만리나 도망간 콩을 주으러 집구석을 돌아다닌다. 숨어 있던 콩알이 나를 빤히 쳐다본다. 쳐다보니...별 수 있어 나이롱 바가지로 들어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