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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조,병조 친구, 병조 아부지, 병조 누나, 병조 엄마 이야기

황금횃대 2011. 1. 8. 21:01

병조랑 동갑내기 남경이가 군대 갔다가 첫 휴가를 나왔다. 남경이는 고등학교 졸업하자마자 즈그 아부지 차를 끌고 댕기며 운전을 일찌감치 배웠다. 그래서 군대가기 바로 직전에는 면허는 물론이고 즈그아부지 화물차도 따라가서 운전을 했던모양이다. 그러니 찌질한 병조 입에서는 남경이 운전 뎁따 잘해! 하는 감탄사가 늘 따라 붙었다. 남경이 엄마는 옛날 아이들이 어렸을 때는 나처럼 시부모님 모시고 좁은 집에서 아이들과 같이 살았다. 시부모님 돌아가시자 이것저것 미용일에 통닭집에...사업을 해 쌌더니 이젠 대전으로 가서 미용실을 한다.

남경이 형 남준이는 대전에서 대학을 다녀 엄마랑 같이 있고, 씩씩한 남경이는 즈그 아부지랑 여기서 같이 살다가 군에 갔다. 명절 전날, 동네 청년회에서 동네 청소를 하면 남경이와 병조도 나가서 청소를 하는데 그 때 내가 부침개를 구워 수고했다는 말과 함께 회관으로 들이밀면 병조 표현대로 하자면 "마치 부침개에 환장한 사람같이"부침개를 맛있게 먹는단다. 그 말을 들으니 괜히 내 맘이 짠했다. 일 년에 두번 먹으면 실컷 먹을 부침개에 애가 저렇게 기갈이 들린것 처럼 먹는다니. 옛날 새댁이시절에 남경이 엄마도 부침이를 잘 구웠다. 아들도 잘 거둬 먹여서 남경이는 덩치가 씨름 선수같다. 얼굴도 뿌여니 살이 뽀송뽀송한게 누가봐도 한 인물을 하였다. 거기 반해 우리집 찌질이는 맨날 거둬 먹여도 삐쩌그니 말라 비틀어진 노가리새끼같이 볼품이 없다.  그런 남경이가 지 친구라고 병조를 찾아와 내가 깎아 주는 사과 한 알 찍어먹고는 병조를 데리고 나갔다.

 

저녁 먹으러 들어온 고스방에게 남경이가 휴가 나와서 같이 놀러 갔다니 그때부터 안절부절이다. 자슥놈이 술이나 먹지 않을까, 술 먹고 또 운전하는 옆에 타지 않을까 전전긍긍이다. 그러다가 아홉시가 좀 지나니 전화를 해 보란다. 식당에서 한 잔 하고 있다고 대답을 듣고서도 그저 짜식이 술을 많이 먹지 않을까, 담배 연기 자욱한 피시방에 가지 않을까 걱정이 늘어졌다. 나이 스물이 다되가는 사내자슥에게 뭔 간섭을 그리 하고 싶은지..

 

어이고, 놀다가 한 잔 하고 들어오것지요...하고 말꼬리를 슬몃 낮추어 대꾸를 하는데 대번 그게 거슬리는가

"여편네가 아아가 어디 가 있는지도 모르면서.."하며 버럭 괌을 지른다. 가긴 어딜가 꼴란 서도 상가 이층 꼬치집에 앉아 있겠지. 늦도록 먹을 수 있는곳이 두어군데 밖에 더 되요? 식당은 벌써 문 다 닫았을거구..

 

12시가 넘어가자 그 잘 자던 잠도 안 자고 고스방은 쇼파에 삐스듬히 누워 이자식이 왜 여태 안 들어와!를 연발 장전하고 발사한다. 대꾸도 하기 싫어 방에 들어와 가계부 정리를 한다.

 

새해에는 지출 없는 날을 늘이자...하며 지출 없는 날은 자막대기를 대서 대각선으로 빗금까지 쳤다. 일테면 월말에 빗금만 세어 보면 내가 얼마나 지출을 제어하며 살았는가를 한 눈에 알아 볼 수 있게 하기 위해서 그런 되도안한 표식을 해 놓았다. 그리고 현금 잔고도 봉투에 넣어 놓은 것과 가계부가 딱딱 맞아 떨어지는가를 일일히 검사하고 확인했다. 왜 이렇게 빡시게 살게끔 마음 먹게 했는가는 섣달 그믐날 밤의 영향이 크다.

 

오늘 목욕을 가서 목욕용품 담은 비닐봉다리를 보니 빠리바게트 비닐 빵봉다리가 어언 일년이 다 되어 가는거 같다. 이렇게 알뜰히 살아도 왜 부자가 안 되는지 몰것다. 부자는 하늘이 낸다더니 그 말이 맞는갑다. 물가며 공공요금이 줄줄이 인상 되고 심지어 눈만 뜨면 돌려대는 엘피지가스도 가격이 올랐다하니 자꾸 살림살이가 오그라 든다.

 

상민이는 오후에 전화가 와서 드디어 알바자리를 구했다고 한다. 외갓집에서 며칠 동안 알바구한다고 여기저기 칼바람 속을 왔다갔다했는데 빨리 구해지지 않으니 괘히 초조하고 외숙모한테 미안하더라나. 엄마, 취직을 못하고 빌빌대는 심정이 어떤건지 정말 뼈저리게 느꼈어! 한다. 누가 눈치주지 않았는데도 스스로 그런 것을 느낄 나이가 되었다. 저녁 고스방 밥상 머리에 앉아 이렇게 이야기하는데 또 울컥한다. 똥오줌도 못가리던 갓난 애기가 벌써 저렇게 커서 제 앞가림 하려고 골을 썩이는구나..싶어서.

 

추위가 누그러지지 않고 있다. 내일부터는 또 춥다고 한다. 골목 들어오는 굴다리 내리막길은 눈이 녹지도 않고 그대로 얼어붙었다. 면사무소에 염화칼슘 좀 달라고 하니 그것도 없다고, 구제역 비상품만 남았다며 동네까지는 지급을 할 수가 없다고 한다. 할 수 없지 조심조심 다니는 수밖에. 시절이 하 수상하니 마음 단단히 먹고 앞섶 야무지게 여미고 살 밖에. 사는기 고해라더만..그래도 오늘 나는 <사랑으로>를 연주하며 꽁꽁, 날씨야얼어 붙더라도 마음 만은 좀 따스해보자고 다짐한다..무엇으로?

사.랑.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