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을 잘 건너려면..
이야, 진짜 날씨가 춥네. 설거지하고 밥찌끄래기 던져 줄라고 닭장 문을 여는데 손이 문고리에 쩍, 달라 붙는거야. 깜딱 놀랬네 손 안 떨어지까바. 달구새끼 똥꼬를 마악 빠져나오는 달걀을 손에 들면 따뜻하다. 근데 주인이 달구새끼 뒤를 졸졸 안 따라 다니니 달구새끼가 언제 계란을 낳았는지 알 수가 있나 어떨 땐 닭장 속에 들어가 계란 꺼내올라믄 그게 꽁꽁 얼어서 찌지직 터져있어. 그럴 때나 촌사람들 한 마디 하지, 어이쿠 육실허게 추웠나보다.
어젯밤에도 눈바람이 실실 내리쳤다. 사방 눈보라가 몰아칠 때 창문을 열고 밖을 내다보면 높다랗게 매달린 네온등 아래도 눈들이 와우와우 쏟아쳐내려. 그것도 참 볼만한 풍경이야. 금방 눈들이 지붕이고 거름자리고 푸대고, 콘티박스 위에고 막 쌓이는겨. 낼 아침 눈 치울거 생각하면 오금이 저리지만 저렇게 눈이 오로지 내리는 풍경에 몰입하여 땅으로 사정없이 몰아칠 때는 장관이야. 아무 생각도 없지. 그저 그걸 쳐다보는 것으로 온갖 상념을 지워버릴 수가 있네. 눈이 차갑게 내릴 때 짠하게 생각할 식구가 퍼뜩 떠 오르지 않는 것은 그나마 다행이야, 어데 눈벌판에 핏줄이 허적거리고 이 시간까지 댕길거란 생각을 하면 또 머리 속은 복잡아지지 그게 인간사야.
고스방은 어제밤 파리바게뜨 떨이 빵을 한 보따리 사왔다. 빵을 던져주며 자기 발을 씻을 물을 떠 오란다. 물을 떠다 주는 사이 보리껍데기 병조는 드라마 <싸인>을 다운받는다. 쇼파에 앉아 발을 따뜻한 물에 담그고 건너편 긴 쇼파에 노트북을 걸쳐놓고 드라마를 본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딱 한가지. 본방 사수를 못하기 때문이다. 시간 맞춰 본방사수를 외치고 좌정하고 앉아 털끝 날리는 소리도 죽여가며 티비를 보는데 그러자면 얼마나 잠이 쏟아지는가. 36%도 채 못다 보고 고스방의 의자에 45도 각도로 찌그러져 코를 골며 잠을 잔다. 그래서 특단의 조치를 내린게 발을 물에 담궈 놓고 발을 씻으며 노트북으로 드라마를 보는것.
프레지던트, 싸인, 시크릿가든...내 노트북의 드라이브는 젠장 용량 초과 직전이닷.
아랫마산리 김학성씨가 11시 6분에 전화를 했다. 이장님, 이장님, 12시쯤 되서 하마산리 경로당으로 좀 내려 오세요.. 그 아저씨는 상민이 친구 현정이 (닉네임 여우)의 아빠다. 현정이 엄마는 현정이가 중학교 3학년에 암의 재발로 돌아가셨다. 현정이와 오빠 하나를 남겨놓고. 가 보니 온동네 사람과 친척들까지 회관에 모여서 점심 잔치가 벌어졌다. 현정이 할머니의 팔순이시란다. 오토바이타고 가는데 얼굴이 얼어 터지는줄 알았네. 눈이 꽁꽁 얼어 붙은 농로길을 조심스럽게 가는데 정말 겪어 보도 못한 오십년대 겨울같았다. 벌판은 눈들이 얼어 있고 도랑가 나뭇가지는 에이는 삭풍에 회초리 날아드는 소릴 내며 울고 있다. 이 추운 날을 버텨야만 버들개지는 눈을 뜨고 목련나무는 목화솜같은 꽃들이 벙글어 피겠지. 문득 패딩 파카나 모직 코트 이런거 말고 섶 선을 따라 토끼털을 두른 털배자나 누비두루마기 입고 싶단 생각을 했네. 옛날처럼 머리에는 무늬양단 조바위를 쓰고. 그 둘만 있으면 차갑고 시린 이 겨울을 건너 가는게 일도 아닌거 같다는..
자, 사 입을 형편은 안 되고 어디가서 사진이나 좀 퍼서 올끄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