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수반-젠장, 잠이 안 와!
<상민이도 나처럼 잠이 안와서 마우스로 이딴 그림을 그려 제 싸이에다 올리고 있습니다>
1.
오후에 난곡리 꽃선생집에 시금치를 뜯으러 갔습니다. 옛날
붉은 황토로 지은 사과 창고에다 방을 들이고, 꽃선생은 몸이 아픈
남편과 살고 있지요. 큼지막하게 지은 그녀의 하우스 안에는 맹추위
에 아랑곳 않고 시금치가 새파랗게 자라고 가장자리에 심어진
배추는 슬쩍 줄기가 얼었습디다. 정리정돈을 나만큼이나 잘 못하는
꽃선생은 하우스 빈자리에 꽃꽂이 용기와 조화, 또는 그녀가
수업할 때 쓰는 여러가지 재료들을 보물찾기처럼 배치해 두었습니다.
일반 촌구석 집에서는 볼 수 없는 갖가지 것들..
그 집의 수반(꽃꽃이 용기)를 보고 옛날 옛적 내 츠자적 하나 밖에
없던 검은색 수반이 생각났습니다. 봄이면 지천에 피어나는 꽃들이 고개만
돌리면 가득이고, 집 뒤안을 따라 심어 놓은 과일 나무에서도 꽃들은 아낌없이
피오주는데 시집 오는 살림살이에 그 검은 수반은 뭐할라꼬 꾸역꼬역 짐보퉁이
속에 넣어왔단 말입니까. 몇 백리 떨어진 넘으 집으로 오면서
기껏해야 수돗간 귀퉁이에나 놓여질 그 무거운 질그릇 하나를 친정 피붙이나
되는양 겨운 눈빛으로 바라보던 그 때!
십 수년 지나자 그것은 눈 안에 들어오지도 않고 어느 날 집구석, 구석 청소하며
드디어는 삽짝 밖으로 추방하기 위해 노랑 외발구르마에 실어 거름과 같이 철둑 비얄
어디나 밭둑가에 훅, 쏟아서 버린 그것.
꽃선생집에서 아름다운 화기를 보며 불현듯 내다버린 투박한 수반이
생각납니다. '그래 이젠 피붙이란 개념도 몽땅 달라졌다는 말이지 흥!'
나는 내 속의 나에게 비웃는 코웃음을 날립니다. 꽃선생 집에서
늦게 마신 커피 때문에 새로 한 시가 훌떡 넘어 갔는데도 나는
쉬이 잠을 못자고 이렇게 검은 수반, 검은 수반, 되뇌며
잠을 불러 모으지요. 그 수반의 겉에는 지금 생각이 막 떠올랐는데
가로로 둥근 테가 몇 개 만들어져 있었습니다. 무거운 수반을
물 묻은 손으로 들었을 때 선뜻 미끌어지지 말라고 그 둥근 테두리가
층층히 있었습니다.
버리고 난 뒤에는 한 번도 생각한 적이 없었는데 바람도 모서리에서
잠시 눈 붙이는 이 시간에 나는 왜 이러구 있는지....
아무래도 비닐 하우스 안에서 본, 이 겨울에 어울리지 않는 시금치의
초록핏톨들이 머리 속에 너무 선명하게 들어 앉은 탓이라 생각합니다만.
2011. 1.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