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뜩 마무리 하자
故시어머니와 대가리 2
그렇게 우리집은 하루가 다르게 한 쪽 모퉁이씩 훤해졌다. 아버지는 아침 일찍 일어나 뒤안을 쓸어내고 둘째날과 세째날은 무너진 흙담을 고쳤다. 적어도 십년 이상씩 무너져서 온갖 생활 도구들로 담을 쳐놓은 곳을 깨끗하게 들어내고 옛날 기왓장을 옮겨서 황토흙을 이겨 담장을 멋뜨러지게 쌓으셨다. 담장 안쪽으로 지저분한 나무들도 베어내고 베어낸 나무는 불 때기 좋게 토막을 쳐서 구석에 반듯하게 쌓아 놓으셨다. 부엌에서 밥을 하다가 일부러 뒷문을 열어 놓고 아부지가 새로 쌓으신 흙담을 쳐다보면 어데 남으 집에 온 듯 생경하다. 아버지와 나는 살구꽃잎 떨어지는 장꽝 앞에 앉아 훤하게 치워진 담벼락을 배경으로 소주을 한 잔씩 마셨다. 봄볕도 알맞은 무게로 어깨 우에 토닥토닥 떨어지는 봄날이다.
아버지는 통풍이란 병이 있다. 멀쩡하니 괜찮다가 갑자기 통증이 시작되면 손가락이 붓고 그 아픔이 얼마나 심한지 잠을 못 이룰 지경이였다. 쉬엄쉬엄 하시라 해도 한번 손을 대면 맘에 들만큼 되어야 손을 놓으신다. 고스방이 아버지의 부은 손가락을 보고 깜짝 놀랐다. 설명을 듣는다 병에 대해서. 음식을 조심해야 한단다. 등푸른 생선도 안되고, 술도 자제를 하고 요산이 발생할 소지를 최대한 줄여야한다고..그래요? 그럼 흰살 생선을 괜찮구요? 오징어나 동태는 괜찮은거지? 마침 그 날이 황간 오일 장날이라 고스방은 장에 가서 오징어와 동태를 사왔다. 이거 시원하게 끓여 드려.
저녁에 동태국을 끓였다. 냉동실에 들어 있던 바지락과 새우를 넣고 끓였다. 동태 몸통이야 몇 동가리 되나. 어른들 국 그릇, 고스방 국그릇, 알바하는 딸래미 국 그륵에 한 동가리씩 넣고 다음 끼니 한 번 더 먹을라면 나는 동태 대가리를 건져올 밖에. 으흐흐흐흐...동태 대가리.
돌아가신 시어머니는 동태국을 끓이면 내가 응당 넣어서 떠 드리는 한 동가리 동태 몸통 외에 꼭 대가리를 건져서 달라고 국 그릇을 받으시면서 반드시 말씀을 하셨다. 그러고는 동태 뼈를 발라 살을 아버님 국 그릇에 훌쩍 넘겨 주시고 어머님은 동태대가리를
단단히 우겨쥐고는 대가리 속에 스며든 국물까지 쭈욱쭉 빨아드시면서 억센 뼈 사이에 붙어 있는 살을 샅샅히 발라 드셨다. 식사가 끝나면 어머님의 국그릇 앞에 동태뼈가 수북했다. 내가 아버님은 따로 더 드릴테니 어머님 드시라고(몸통을) 아무리 말을 해도 들은 척도 않았다. 동태대가리를 독점하는 권력, 나는 그게 모옵씨 싫었다.
이제 어머님이 안 계시니 나는 자랑스럽게 내 국그릇에 동태대가리를 턱허니 떠다 놓았다. 동태대가리를 먹을 수 있는 권력이 생긴 것이다. 이런 어머님과 나와의 알력을 아버님은 알턱이 없고, 친정아부지는 더더욱 모르고, 동태를 열심히 사다대는 고스방은 꿈에도 생각을 못했을 일이다.
동태 눈알을 입안에 넣고 허연허니 맛도 뭣도 없는 그걸 딱 소리 나게 앞니로 반쪽 내면서 난 뭔지모를 자유를 느꼈다. 그 동안 나는 동태대가리에 집착한 불쌍한 영혼이였던게다.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