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이 났다
시아버지는 지난 금요일에 병원 약타러 가셨다가 심장 초음파에 관상동맥 검사까지 겸해서 하다가
관상동맥 하나가 거의 막혀 있는 중대사안을 발견했다.
구십 노인이 늘 혼자 병원가서 검사하고 약 타오시고 해서 식구들은 아무도 안 갔다.
병원에서 전화가 와서 스텐트 시술을 급히 해야하는데 연세가 많으셔서 하는 도중에
핏줄이 터질지도 모르는 급박한 사정이라며 고스방을 협박했다.
비가 쏟아지는 날 11시에 이장회의 중인 나를 불러내서 불나게 대전 병원에 갔더니 아버님은 벌써
스텐트 시술을 끝내시고 회복실로 나오시고 계신다.
시술을 수술로 알아들은 고스방의 난청을 나무란들..
아버님은 그길로 중환자실로 올라 가시고 나는 집으로 왔다
다음 날, 김치를 담고 빨래를 해서 널어 놓고는 1시 면회시간 맞춰 병원에 갔다가 저녁 막차를 타고 다시 집으로 왔다. 산이면 산, 길 섶이면 길 섶마다 꽃들이 만발하였다.
연두빛이 연두색으로 변하는 산에는 산벚꽃이 구름무더기처럼 뿌옇게 피었다
무장무장 피어나는 그 꽃들을 졸린 눈으로 바라 보았다.
그렇게 하룻 밤을 자고 다음 날 상민이와 목욕을 갔는데 다 씻고 옷 주워 입는데 목욕탕 주인 아줌마가 들어와
"이장님, 퍼뜩 집에 가보시야겠서. 얼른 오라고 전화왔서어~~"
특유의 길게 빼는 억양으로 급한 소식을 하나도 안 급하게 전해주는 아줌마
나는 이런 말에 미루어 알아차려 스스로 급하게 움직이는 유전인자를 진작에 구축해놓았다
정신없이 옷 끼워넣고는 오토바이타고 냅다 달리는데 동네 굴다리 내려 가기전 공터에
많은 차들이 정차되어 있다. 굴다리를 빠져나가니 동네 사람들 다 나와 있다.
거기다 동네 입구에는 소방차가 여러대 서있다. 나와 서 있던 명례아줌마가 얘기한다
"이장, 놀래지말어 큰 일아니야. 집에 불이 났어. 이제 어지가히 껐네"
젠장 불이라니. 우리 아부지, 우리 아부지 집에 계시는데..
별 피해는 없으니까 너무 놀래지말어. 어른도 괘안으시고.
오토바이 세워 놓고 집까지 뛰어가니 연기가 자욱한데 소방대원들이 불을 끈다고 정신이 없다.
불꽃은 보이지 않고 연기만 자욱하다. 아랫채에 누전으로 불이 난 것이다.
홀라당 껍데기는 다 탔다.
칸칸히 방에 넣어 두었던 콘티박스와 포도박스, 잡다부리한 것들이 탔다.
그 집, 아래채는 양철지붕을 얹은 흙집이였다.
아버님 동갑계원들이 울력으로 지은 집이였다. 기초를 하고 새끼를 꽈서 집 전체를 두르고 수숫대로 황토흙을 붙일 작은 뼈대를 넣었고, 서까래에 동량식하던 날짜와 축원을 기록한 붓자욱이 선명한.
뒷고샅 흙구디에서 황토흙을 파와 잘게 짚을 썰어 넣고 아버님 계원들이 용수에 고인 막걸리를 걸러 마시며 지은 집이 였다.
막내 시고모님이 시집 가던 날 마굿간에서 음식 차려 내는 가방을 보고, 그 위의 시고모님은 첫째 아기를 끝에 방에서 받았다. 이젠 사람이 살지 않지만 어머님은 거기서 불멀미를 하며 다리미질을 하고
아버님 편찮으실 땐 방문 앞 들마루 끝에서 까마귀 떼가 울부짖은 집이였다.
그 집이 다 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