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집을 털어내니 많은 옛것들이 나왔다
자동차부속은 잘 조립하면 차 한 대 만들 분량이 쏟아졌다
나무지게와 지게 작대기, 괭이만한 호미, 가마니가 다섯장, 학교 종, 조선 총독부가 발행한 민력까지.
아버님이 국민학교 때 공부한 교과서까지.
낡은 미농지 등기권리증은 먼지처럼 삭아 있다
옛날 부자집 소리 아니들었다할까바 낡은 재봉틀이 두 대가 나왔고, 재봉틀 길다란 서랍에서는 수많은 종류의 단추가 쏟아졌다. 기름종이에 겹겹이 쌓여 있는 재봉 바늘과 할아버지의 낡은 안경집, 안경집은 낡아도 백동 장식은 옷소매로 닦으니 반짝이며 옛 빛을 내비친다.
무명을 짜던 바디가 몇 개 나오고 송홧가루로 찍어내던 다식도 나왔다
가마니 짜던 커다란 바디도 하나 나오고 나무 한 그루를 세로로 쪼갠 길다란 도마도 나왔다.
옛 시절 돼지잡아 난도질했던 칼자욱이 낭자하다
지게 위에 얹어 깔비를 끓어 모아 얹었던 바지개도 비료푸대로 한 귀퉁이를 기운 채 세워져있고
고서방의 사형제가 쓰던 노트며 연애편지들이 무더기로 발견 되었다.
어머님 젊어서 동네 아줌마들과 놀러가서 찍은 한복 입은 사진들.
그야말로 한 집안의 역사를 말해주는 물품들이 자루가 썩은 채로, 녹이 겹겹히 들고 일어난 채로, 누룽지처럼 겹겹히 눌어붙어 일어난 표정으로 햇볕을 본다.
어머님이 아버님과 마주 보며 백년 가약을 맺었을 초례청 높은 상까지 나왔으니, 옛 살림이 어떠했는가를 짐작 할 수 있다.
이렇게 한 집안의 역사와 손때 묻은 애환을 간직한 집은 오늘 하루 종일 비를 맞으며 골골이 타고 내리던 양철 지붕의 낙숫물을 추억하며 떨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