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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살았구나..

황금횃대 2011. 5. 30. 08:38

 

 

오전에는 첫휴가 나온 아들을 깨워 포도밭에 약을 쳤다

아들은 내가 행여라도 약을 치면서 줄을 당길 일이 생길까바 약줄을 들고 두 걸음 뒤쯤을 졸졸 따라 다녔다

백오십미터짜리 약줄을 한 나절 내도록 끌고 다니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점심 먹고 오후에는 딸래미와 같이 포도 육손을 따고 나는 결속기로 순을 달아 매었다

저녁 때가 되어 서둘러 집에 와서 밥 앉히려고 보니 아들놈이 밥 한 솥을 얌전히 해서는 원래 조금 남아 있던 식은 밥을 곱게 얹어 놓았다

돌아서서 컵이며 몇 개의 그릇을 씻는데 눈물이 와락 난다

 

전상순, 참 잘 살았구나... 훗날 내 자식들이 천번쯤 나를 서운하게 하더라도

오늘 이 뜨거운 밥 한 솥을 생각하며 아무렇지 않게 넘길 수 있으리라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