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횃대 2011. 8. 18. 19:39

내고장에도 포도따는 시즌이 돌아왔다. 작년에는 이장 수곡 포도밭을 밭뙈기로 넘기는 바람에 따는 수고는 하지 않았는데

올해는 그렇게 하지 못해서 포도를 손수 따내서 박스에 담는 작업을 해야한다.

며칠 전부터 밑반찬 준비에 마무리못한 일들을 해낸다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다 이제 포도밭에 포장이나 치고 박스를 실어다 놓고...이런 일을 해야지 하고 맘을 먹고 있는데 어제 이어 오늘 새벽에서 장대비가 쏟아진다.

 

빗소리 듣고 잠을 깨어 창 밖을 보니 아직 날은 밝지 않고 빗소리만 천지에 가득하다

더듬더듬 일어나 마당을 내다보니 고추 말린다고 마당 귀퉁이에 만들어놓은 싸리나무 채반 위에 고추가 비닐을 덮어 쓰고 속에서 썩는지 무르는지 그러고 있다.

해가 바짝 나면 고추말리기 일도 없는데 도대체 사흘이 멀다하고 비가 내리니 그나마 물러 터진거 씻어서 널어 놓은게 다 썩게 생겼다.

고추 따서도 집에 가져와 다라이에 물 받아 맨손으로 씻어 건져 펼쳐 놓았는데 손등이며 바닥이 얼마나 화닥거리던지 잠을 못자고 뒤척였는데

그 수고가 몽땅 도루묵이 되게 생겼다. 촌구석 살면서 고추가루 만큼은 내 손으로 농사지은 것을 먹자고 다짐을 하고 고추 모종을 사다가 아버지랑 딸래미랑 이틀을 늦도록 밭에서 심었고, 행여 병을 할세라 아침 저녁으로 들여다보며 방비를 했건만, 대책없이 내리는 비에는 당할 재간이 없다.

 

그래도 그 악조건을 이기고 붉게 익을 고추를 이슬에 옷젖는거 개의치않고 따다가 말릴랬더니 저모양이다. 에이 속상해.

 

할 수 없이 전기벌크가 있는 집에 전화를 했다. 수미 아줌마가 흔쾌히 자기집 벌크에 말려 주겠노라고 가져오라했다. 동네 뒷산 골짜기를 따라 한참을 올라가야 수미네 소먹이는 축사가 나오고, 축사 맞은편에 작은 방과 창고를 들여 고추건조기가 자리 잡고 있었다. 이십년을 살아도 축사 안 마당에 들어와 보긴 첨이다. 낮으막히 들여 앉힌 방은 아줌마의 공간이였다. 낮은 옷걸이, 낡은 텔레비전, 버리기엔 거시기한 전축, 발수건, 모자가 방에 옹기종기 걸려있고 겨울에 불을 때서 스며 들어온 연기가 벽면을 그을린 자욱까지 얼룩으로 남아 있다

아줌마는 종이컵에 커피를 한 잔 타다 주며 마시라한다. 젖은 발을 옴츠리며 작고 낮은 그 방에 앉아 작은 여닫이 창 밖으로 눈보라처럼 뿌려대는 비를 바라 본다.

겨울에 놀러 오란다. 바느질감을 들고 아줌마가 군불 지펴 놓은 방에 앉아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며 바느질을 해야지..속으로 다짐을 한다.

산골짝 농막 위로 눈이 싸그락싸그락 내리는 날이면 더 좋고

 

새벽에 깨어 이런저런 걱정으로 잠을 못 잤는데 고추를 벌크에 넣고나니 세상 걱정이 한 순간에 거둬지는 느낌이다. 우의를 입고 집으로 다시 오니 아버님이 가슴을 움켜쥐고 고통스러워한다. 아침까지 진지도 맛있게 한 그릇 뚝딱 잘 드셨는데 이 무슨.

하기사 이번 달 초, 밤 열한시에 가슴 통증을 호소하던 아버님을 모시고 대전 선병원에 급하게 가서 검사를 하고 했는데 별 이상이 없다하여 퇴원하여 집으로 왔다. 그런데 또 아프시단다. 다시 고스방을 불러서 아버님과 같이 병원에 갔더니 통증을 가는 동안 가라앉았는데 원인을 찾아야 했다. 올 봄 급하게 관상동맥 조영술을 하여 스텐트 하나를 밀어 넣었는데 또 어디에 탈이 나신걸까..

 

심전도 근전도, 피검사 다 했는데도 별다른 이상은 없다하는데 또 그러면 어쩌나 싶어 입원하여 내일 검사를 받기로 하다

중환자실에 입원시키고 집에 오니 다섯시다. 내일 또 병원 가봐야한다. 1시 반에 중환자실에 올라가야 하는데도 내가 사 들고 간 추어탕에 밥 한 그릇 말아서 맛있게 음급실에서 드신다. 지금으로 봐서는 아무 이상도 없는데...그저 식사만 잘 하시면 괜찮아 보이니.

 

의사는 몇가지 서약서를 가지고 와서 싸인을 하란다. 스텐트도 3개까지는 의료보험이 적용이 되는데 3개 초과부터는 보험 적용이 안 된단다. 스텐트 하나에 백만원정도 된단다. 거기다 혈관이 꽉 막혔을 경우 그걸 뚫어주는 시술도 보험이 안되고, 통상 손목동맥을 절단해서 조영술을 하는데 그것이 여의찮으면 서혜부 부분의 동맥에 구멍을 뚫어야한다며, 그렇게 할 경우 연세 많으신 분들은 지혈을 용이하게 하는 시술을 하는데 그것도 사십만원쯤하며 당연 보험이 안된단다. 이런저런 비보험 시술서에 확인 서명을 해주고 고서방한테 이야기를 했다. 통상 스텐트 두개 정도 시술하면 보험적용하여 2006년에는 이백몇십만원쯤 들었고, 지난 봄에 스텐트 하나 시술 하는데는 백오십만원쯤 병원비로 들었다. 그런데 보험이 안되면 도대체 얼마만큼의 병원비가 나올려는지...

 

그런저런 걱정을 뒤로하고 집에 와서 아버님이 벗어 놓으신 빨래를 하고 저녁을 고스방하고 먹는데 이 밥은 왤케 맛있는고야

낮에 병원근처에서 알탕이라고 한 그릇 사먹는데 뜨거워 입천장만 다 데이고 먹고 난 뒤에도 뭔가 덜 먹은 듯 허기가 지더니.

 

역쉬 집 밥이얏.

내일 걱정은 내일하고 오늘은 그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