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횃대 2011. 9. 16. 21:00

 

애인 생일날이다 . 어젯밤 씨러져 잘 때는 새벽 달구새끼 초성이 터지자마자 그대 생일 축하하노라 문자를 보내겠다고 다짐을 했지만 인생, 사람 일이란게 마음 먹은대로 어디 되어주는가. 어제 아버님이 종일 땡빝에 따 놓은 고추 푸대를 풀러 고추를 고르고 골안 끄트머리 수미네 축사에 설치된 벌크에 오토바이로 두 번이나 고추푸대를 실어 날라 채반에 고추를 날라르미 너는 사이 애인 생일 문자는 까마득히 잊었다. 새벽 안개가 골짜기 가득 숨을 뿜어 대니 오토바이 속력과 안개 흡입 사이 압력 조절을 제대로 못해서 두어번 헉,기침을 하였다. 절시한 벼들이 누르스름 익어가고 있다. 메뚜기들은 아직 젖은 잎사귀 뒷면에서 새벽잠을 즐기리라. 구이장 아저씨도 일찌감치 감장대를 들고 호두를 털러 나왔다. 탁,탁, 호두나무 가지를 후려치면 장비 불알같은 호두가 두쪽씩 붙었다가 후두둑 떨어졌다. 비슷한 연배의 구이장 여편네가 낫을 들고 풀숲을 헤치며 호두를 줍는다. 풋호두는 마빡이 깨진 놈, 옆구리가 터진 놈, 발가락이 튕겨져 나간놈, 그저 푸른 겉껍질이 상처를 입고 콘티박스에 수북히 담긴다. 풋껍질 속에는 그 비를 이기고 딱딱한 호두껍찔이 뽀얗게 보인다.

 

식은밥을 아침에 물 부어 삶아 놓고  포도작업을 끝내고 늦은 점심을 먹는다,  삶은 밥은 뽀얀 국물이 엉기어 흰죽처럼 되었다. 흰죽 같은 삶은 밥 한 숟갈에 나박김치 건데기 한 숟갈을 먹는다. 살아 생전 시어머님은 나박김치를 먹을 때 시어머니의 시할머니 흉을 봤었다. 그러니까 내게는 ㅅㅣ증조 할머님이시다.  시증조 할머니 살아 생전에 이우재에서 아줌니가 놀러 왔는데 같이 점심을 먹게 되었나보다. 좀 살던 우리집 나박김치에는 사과며 배가 들어갔으니 살기 힘든 그 아줌니는 나박김치 건데기가 얼마나 맛있었겠는가  연신 건데기를 건져서 먹으니 시증조할머니께서는 토끼같이 빨간 눈에 불을 켜고는 일갈 하셨단다. 독골띠기는 어데서 배운 버르장머린가 여편네가 김치국 건데기만 홀홀 건져먹다니!"

 

동네에서 일명 호랭이 할머니로 통했다는 그 할머니 이야기를 어머님이 나박김치국을 먹을 때는 꼭 하셨다. 나는 그 이야기를 어머님이 하셨다는 이야기를 이제 나박김치를 먹을 때면 또 떠올릴 것이다. 둘다 이젠 이세상 사람이 아니다.

 

꾸역꾸역 삶은 밥으로 점심을 먹을 때도 애인 생일은 생각나지 않았다. 애인과 같이 생일 점심상을 같이 못 할 바에야 그렇게 까마득히 잊어 버리는 것이 삶에 도움이 된다. 저녁에 택배로 보낼 포도박스 포장을 다하고 택배 차를 기다리는데 해는 월류봉 봉우리를 훌떡 넘어가고 입은 단내가 확확난다. 그래 오늘은 애인 생일이지.

 

그제서야 전화기를 꺼내들고 문자를 보낸다. 새벽바람에 생일 축하 문자를 보내려했지만 존나 바빠서 그리 못했노라. 그대는 서운히 생각마시고 그대 식구들이랑 맛있는 저녁을 먹으시라..나는 마음만 보낼테니..

 

곧바로 애인은 답문자를 보내왔다. [그 마음에 눈물이 나노라고.]

애인이 비싼 밥 먹고 뭐할라고 내게 거짓말을 하겠는가. 정말 그는 눈물을 흘렸으리라.

 

나도 마악 딸래미가 구워 준 돼지목살 양념볶음을 저녁으로 먹으며 햄볶았다. 왜? 애인 생일이니까!

 

*햄볶았다=행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