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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한 물음들에 답함

황금횃대 2012. 1. 14. 20:23

 

사소한 물음들에 답함

 

 

송경동

 

어느날

한 자칭 맑스주의자가

새로운 조직 결성에 함께하지 않겠느냐고 찾아왔다

얘기 끝에 그가 물었다

그런데 송동지는 어느 대학 출신이오? 웃으며

나는 고졸이며, 소년원 출신에

노동자 출신이라고 이야기해주었다

순간 열정적이던 그의 두 눈동자 위로

싸늘하고 비릿한 막 하나가 쳐지는 것을 보았다

허둥대며 그가 말했다

조국해방전선에 함께하게 된 것을

영광으로 생각하라고

미안하지만 난 그 영광과 함께하지 않았다

 

십수년이 지난 요즈음

다시  또 한 부류의 사람들이 자꾸

어느 조직에 가입되어 있느냐고 묻는다

나는 다시 숨김없이 대답한다

나는 저 들에 가입되어 있다고

저 바다물결에 밀리고 있고

저 꽃잎 앞에서 날마다 흔들리고

이 푸르른 나무에 물들어 있으며

저 바람에 선동당하고 있다고

가진 것 없는 이들의 무너진 담벼락

걷어차인 좌판과 목 잘린 구두,

아직 태어나지 못해 아메바처럼 기고 있는

비천한 모든 이들의 말 속에 소속되어 있다고

대답한다 수 많은 파문을 자신 안에 새기고도

말없는 저 강물에게 지도받고 있다고

 

                               창비  사소한 물음들에 답함. 2009

 

 

 

그제 저녁,

여덟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에 고스방은 저녁을 먹으러왔다. 얻어 온 대게를 삶아 놓은 줄 알았는데 여편네는 도대체 저녁 준비를 한 건지 만건지, 어쨌던 한 끼 게우 떼우리고 말것이라는 각오가 온몸으로 느껴지는 저 여편네는 게도 삶아 놓지 않고 먹던 반찬을 종지기만 바꿔서 차려내 놓는다 . 숟갈을 들고 비지장을 몇 숟갈 밥 우에 끼얹어 서너 숟갈 떠 넣는데 택시를 찾는 전화가 온다. 여보세요 , 예, 예, 어디요? 곡성이요?

 

곡성까지는 한 번도 가 본적이 없는 고스방은 거기까지의 요금을 얼마나 받아야하는지 난감한 표정이다. 그러나 요즘 세상에 정보란 얼마나 손 쉽게 접할 수 있는 거냐? 지난 주 금요일 막돼먹은 영애씨를 못 봤다고 그거 다운 받아 보던 딸년이 즈그 아부지가 거리와 요금에 허둥대고 있는 사이 잠깐 검색을 해서 곡성까지 가는 루트와 거리, 거기다 택시요금까지 깔끔하게 적어서 가지고 왔다. 십 오만원! 요금이 서로간에 결정이 된 모양이다.

 

비지장 국물과 비벼진 밥을 급하게 들어마시듯 떠 넣고는 고스방이 나를 힐끔본다. 되돌아 올 땐 내가 몹시 졸릴 건데 여편네 니가 좀 같이 가줄래? 하는 표정이다. 예전에도 이런 조수 역활을 많이 했다 장거리 손님을 태우면.

다시 걸려 온 전화를 집 식구를 같이 태워 가도 되겠느냐고 조심스럽게 물어보니 타고 갈 손님인지 발님인지는 흔쾌히 그러라고 대답을 한다. 나는 입은 옷차림에 모직 숄만 어깨에 두르고 고스방을 따라 나섰다.

 

매곡주유소에서 손님을 태우는데 술이 한 잔 되었다. 앞 좌석에 내가 앉아 있으니 아까전에 자신이 그러라고 했슴에도 불구하고 흠칫 놀란다. 어서 오시라고 나는 술집 마담보다 더 반갑게 인사를 한다. 출발, 신탄리를 지나서 영동으로 방향을 돌린다. 영동, 무주, 장계, 진안, 장수, 남원, 곡성으로 이어지는 국도노선이다. 영동 미처 가기전에 남자는 의심이 가득한 눈초리로 조심스럽게 이야기한다. "진짜 집식구 맞으신지요? 운전을 하던 고스방이 이 무슨 개 풀뜯어 먹는 소린가하며 의중을 헤아릴 맘도 없이 당연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다고 대답을 하면서 왜요? 하고 물었다. 남자는 계면쩍은 표정으로 자기는 옆에 앉은 여편네가  장거리 갈 때만 같이 가는 영업용택시 기사의 애인이 아닌가 했단다. 나는 웃으며 아니라고 대답을 했는데 범생이 고스방은 살짝 기분이 안 좋다. 자기가 이날 입때까지 평생 살면서 그런 허튼 짓은 꿈에도 생각을 안 해 본 사람인데 이런 의심을 받아서 매우 불쾌하다는 느낌이 얼굴에 섬광처럼 지나갔다. 그러나 그가 누군가 손님 아닌가? ㅎㅎ

 

그러다 영동 가스 충전소에 도착을 해서 충전하는 동안 커피를 빼러 간 사이 남자는 내 의자에 바짝 붙어서 "아주머니께서 참 빈틈없이 생기셨습니다"하고 얘기를 한다. 그러는 사이 고스방이 커피를 가지고 와 남자에게도 한 잔 , 자기도 한 잔 먹으려는데 남자는 나를 쳐다보며 고스방에게 한다는 얘기가 "결혼 잘 하셨네요~"라고 말를 했다. 그러니 고스방은 그 남자가 내게 그런 말을 하는 줄 알고 기분이 좋아졌다. 아까 제 여편네를 불륜주소로 봤던 것도 금새 용서가 됐다. 아이구 뭘요..하니 술 냄새 풍기는 남자는 아니, 사장님이 장가를 잘 가셨다구요오~~하고 확인을 하자 머쓱해져서 또 남자를 미워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양강, 학산을 벗어 날 때까지는 아모 말이 없다가 남자가 뜬금없이 날 보고 <김진숙>을 아느냐고 묻는다. 김진숙?

아까 택시 타려고 기다리던 주유소 주인 여편네 이름인가? 하고 2초간 더 생각하니 아하, 한진 중공업 김진숙씨 이야기하는구나 짐작하고 그렇게 얘기하니 아, 아시네요한다. 소금꽃나무 김진숙을 모르는 사람이 있을라구요. 크레인에서 내려와 땅을 밟았다는 소식 듣고는 눈물이 다 나던데요. 나와 그 남자의 대화는 이렇게 시작되었고 연이어 희망버스와 송경동, 송경동과 삶창, 삶창과 작은책, 작은책과 안건모...이렇게 곡성 그가 사는 삽짝까지 차가 진입할 동안 그의 이야기는 계속 되었다. 그 이야기 중에 안철수, 문재인, 박근혜가 나왔는데 박근혜를 지지하는 고스방과 운전대 놓고 싸울 뻔했다.

 

그는 노동운동중에 만난 그의 부인이야기와 어떻게 프로포즈를 했으며 또 지금은 왜 헤어져사는지..앞으로 그 여자와 어떻게 해야하는지....어떻게 할 것인지 생전 첨보는 우리에게 이야기를 했다. 남자를 내려놓고 집으로 되돌아 오는 길

고스방은 돈을 받고 집주소를 네비로 찍으면서 바로 그 남자의 흉을 봤다. 흥, 짜아식이 경희대 수석 입학했다는놈이 사는 꼬라지하구는... 박근혜 지지한다는 말에 열폭한 그 남자가 도대체 박근혜가 서민을 위해서 한게 뭐가 있냐고 고스방 뒷좌석 의자를 흔들어가며 괌을 질러댔는데 대한 분풀이였다. 고스방은 한참을 남자 흉을 보다가 남원 IC가 보이자 어디로 갈 것인가를 결정하는 순간에 그 남자를 잊고 다른 이야기를 했다. 휴... 그런 놈하고 신나게 이야기하는 여편네 꼬라지하구는...하며 나까지 싸잡아 한 소리 하고 싶은 모양이다. 그게 여보, 다아 외로와서 그래. 그가 총각 때 위대한 노동운동을 하였든 어쨌던, 그는 지금 외로운거야. 그래서 아무나 붙잡고 얘기가 하고 싶은 거야. 누가 노동운동 한거 알아 달라고 그러는거 아니야. 미래는 깜깜하지,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는 잡히지 않지. 그러니까 그 먼 곳, 차도 없이 버스 갈아 타고 전라도 곡성에서 충청도 매곡까지 선배를 만나러 온거야. 그러다 집에 가려고 택시를 탔는데 거기서 뜻밖에도 저도 알고 나도 아는 사람들, 그런 이름 들이 나오니 반가운거지. 그렇게 이해하면되요.

 

고스방은 그래도 분이 풀리지 않는 모양이다. 대선 때 고스방은 박근혜에게 한 표를 던질지, 아니면 또 다른 누구에게 한 표를 던질지 모른다. 그 누구에게 자신의 투표권을 행사할 지라도 그 날밤, 곡성 가는 남자가 한 말을 한 번 되새김은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