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횃대 2012. 2. 23. 20:55

 

 

작년에 포도 따고는 어느 구석에 처박아 놓은 지도 모르는 전지가위를 해그름녘에 찾았다.

다른 농사꾼은 땅이 녹기 전에 부지런히 밭으로 발길을 돌려 전지를 하고

포도나무가지를 바람 불기 전에 밭두렁에 쌓아 놓고 태워없앴는데

나는 고연히 머리가 무겁고 뒷골이 땡기고 의욕이 없어

마음은 번한데 몸이 움직여주질 않았다.

 

동네 마을 기금 나눠 먹는 일은 일차 작업이 끝났으나

후폭풍이 만만찮아 연일 내게 내용증명이란게 날아오고 있다.

보강 서류작업이 더 있을까 싶어 서울 사는 경매박사한테 문의를 하니 개별 위임장을 가능하면 인감증명서 첨부해서

다 받아놓으란다. 그래야 법적으로도 우위를 점할 수있단다. 아, 생각만해도 골치가 아픈일이다.

 

그러니 늘상 마음 한켠에는 이 일을 어떻게 하면 매꼬롬하게 잘 처리할까하는 근심덩어리가 명치에 걸려있으니

잠을 자도 편치를 않고, 자다가 변소간이라도 갔다 오면 도통 잠을 이룰 수가 없다.

근심이 사람을 마르게 하건만, 먹는 것은 또 잘 먹어서 뱃살은 기하급수로 영토 확장을 하고 있다

총체적 난국이다. 몸은 무겁지, 움직이고자 하는 마음은 천길 낭떠러지에 처박혔지

그래도 끼니마다 식사는 준비해야하고 미친 입맛은 내가 한 반찬이 왜 이렇게 맛있는고야

이즈음 짭짤한 조개젓을 사다가 흙구뎅이 파묻어 놓은 무를 나박나박 썰어 쪽파와 양념으로 바물바물 무쳐놓으면

나트륨의 폭퐁 유혹 앞에 밥주걱은 저절로 영차, 영차 하며 밥을 더 푸게 만들고.

어흐흐흐흐흐흑...

통곡을 틀어막으며 가열찬 흐느낌을 쏟아내도 될똥말똥 똥이 두 덩거리인데

나는 어쩌자고 코미디빅리그를 다운 받아 보며 실실 웃어재끼냔말이닷.

 

자,

이제 전지가위도 찾았겠다, 볼트 맺음 부위는 틀기름을 두어 방울 떨어 트려 가위날이 쫙쫙 가랭이를 잘 벌리게 기름칠도

해 두었다. 벙거지 모자도 찾아 놓고, 작업복도 찾아 놓아야지.

장화 속에 먼지도 털어 내고, 빨강고무 코팅 장갑도 몇 켤레 갖춰놓아야지

지난 가을부터 겨울까지 농사 끝나고 배 두드리며 홍야홍야 먹고 놀던 좋은 시절은

대보름날 윷 한 판 노는 것을 끝으로 다 지나 갔다.

전지를 하고, 나뭇단을 묶어 내는 사이, 풀들은 한 점 훈훈한 바람에도 발딱발딱 대가리를 쳐들테고

얼었던 땅들도 속속들이 녹아 진흙개흙들도 얼씨구나 장홧발 뒷축에 덕지덕지  달라 붙을테지

 

이래저래 고단한 삼월이 시작되면

아흐 아롱디리, 농사꾼은 일 시작이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