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질구질 일상
1.
병조는 상병 계급장을 달고 나왔다. 여전히 겉옷 속에는 내복(에어메리두께)을 자랑스럽게 입고 나왔다. 휴가 나온 병조가 점심 먹으러 들어 온 즈그아부지한테 맨처음 한 말은 "아빠 다녀오셨세요" 였고 그 다음 말은 "내복을 입으면 따뜻하다"는 말이였다. 병조 즈그아부지는 내복을 입으면 다리에 털이 뚤뚤 뭉친다고 그 나이가 되도록 내복을 안입는다. 그걸 자랑이라고 맨날 나한테 이야기하다가 그 날은 병조에게 보란듯이 바지를 걷어 올리며 여태 내복을 안 입어서 다리털이 보슬보슬 살아 있다고 자랑을 한다. 그렇게 내복을 입고 겉옷까지 입고 체중계에 올라 갔지만 여전히 저번 휴가 때와 같은 몸무게다. 마의 넘사벽 58킬로그램. "맨날 반찬은 집보다 잘 나온다고 얘기하면서 몸무게는 와 안 느노?"하고 물어보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똑같다. "몰러~~"
2.
상병 병조도 집에 왔겠다 그 담날 곧바로 포도밭으로 데려간다. 거름을 내야한다. 작년에는 고병장(상민이)와 나, 이렇게 둘이서 거름을 냈지만 이번에는 고상병과 같이 하게 되었다. 자슥이 많으면 농사 지을 땐 정말 좋다. 달랑 둘이라도 이렇게 적기에 휴가를 나오니 써 먹을만 하다
친정 아버지, 나, 고상병과 같이 한 나절 거름을 내서 마무리 지었다. 사람 손 하나가 얼마나 무서운지 일을 해보면 안다. 녀석에서 고기를 구워준다. "일하고 난 뒤에 먹는 삼겹살 맛이란?"이런 드립을 치며 고상병은 점심을 맛있게 먹는다. 그 다음날은 포도밭을 새로 만드는 앞논에 델고가서 흙메우기 작업을 시킨다. 집에 와서 즈그 누나랑 통화하는 얘길 듣는다"
"누나, 집에 오니 일거리가 더 많아 군대에선 주말에 일 없는데 여긴 그런 것도 없어, 그리고 아빠는 처음에 일을 같이 하는데 다음부터는 나보고 다 하라그래. 중대장이 따로 없어 아빠가 딱 중대장이야" 고자질을 하니 즈그 누나 상민이는 낄낄 넘어가게 웃는다.
3
고상병도 귀대를 하고 상민이는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 동생이 왔는데도 집에 오질 않고 제 일정을 소화한다. 나는 상민이가 없어 며칠 우울하였다. 계속 우울하다. 그래도 둘이서 머리 맞대고 낄낄 웃고 장난치다보면 하루 종일 골치 아팠던 일들이 싸악 치료가 됐는데 그게 없으니 애꿎은 고스방만 타깃이되어 엄한 소릴 듣는다. 나는 절대로 상냥하지도 않고 고분고분하지도 않다. 그냥 티티 거릴 뿐이다. 내가 봐도 어떨 땐 고스방이 안됐다. 이런저런 농사비용으로 그도 지금 죽을 판국인데 나는 나대로 우울하여 작때기 뿌러지는 소리만 내쌓는다 그러나 어떻게 잘 해 줄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 내 속이 너무 복잡다. 복잡하고도 답답하다. 밥상도 황폐하다. 총체적 난국이다. 제길헐.
4
이 저녁, 비가 내린다. 제법 굵게 세차게 내린다
그저 와우~~ 달라드는 빗소리만 내 가슴 속에 흠뻑 담아 두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