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주 동맹 여편네

홀시아부지 모실래, 비릉빡 기어 올라갈래

황금횃대 2012. 3. 27. 21:15

지난 양력 이월 스무아흐랫날이 어머님 일주기 기일이였다. 대구 있는 둘째 형님도 야간일 끝내고 돌아온 아들과 같이 제사에 참석을 하였다. 소위 이집의 장손자와 그의 에미는 전화 한 통이 없었다. 큰아즈버님 제사때는 온 식구들이 열일을 제치고 해마다 인천까지 올라가 제사를 지내고 새벽 한 시에 출발해서 황간 집으로 다시 오면 새벽 다섯시가 훌쩍 넘었다. 그렇게 했건만 형님과 그의 아들 조카녀석이 하는 짓이 차마 마음에 담아두기 참람하다. 아버님이 몹시 서운해 하셨다. 제사라면 오촌 아저씨네 제사까지 한 번 빠지는 일없이 찾아가는 고스방인데 어머님 제사에 젤 큰 형님집 식구가 오지 않으니 분노를 넘어 뚜껑이 열렸다. 올해부터는 인천 제사를 가지 않겠노라!

 

큰형님이 아무리 어머님과 같이 살 동안 사이가 좋지 않았다고 하나, 백번을 더 양보하여 제 남편이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고는 하나 그것도 첫제사에 그렇게 나몰라라 넘일 보듯 할 것은 사람의 도리로 아니다. 오가는 차비가 든다고하나 하는 짓이 어른다우면 내가 그깟 차표를 못 끊어줄까 역까지 나가지 않아도 인터넷으로 토독토독, 몇 번하면 끊어지는 열차표.

 

지난 어머님 49제 지낼때도 막제에 딱 한 번 참석을 했다. 인천에 사니 그럴 수도 있는 일이라 생각은 했지만, 즈그 아들놈하고 막제 지내는 전날 집으로 들어오는데 탈랑, 빈손이다. 그 땐 친정아부지도 같이 있었다. 아버지는 그렇다 치더라도 세상에 그렇게 시아버지 계시는데 그것도 막제 지내러 오면서  맨손으로 올 수가 있냔말이다 어른 계시는데. 음료서 한 박스 돈 만원이면 족한 세상인데..나는 속으로 저걸 인간으로 봐야하나 어째야하나...심히 눙깔이 휘떡 디비지는 것이다. 저렇게 살아서 자식 한테 무슨 효도를 바랄것이냐, 아니나 다를까 형님의 아들은 즈그 엄마를 개떡같이 안다. 아즈버님 돌아가시고 난뒤 형님이 하도 아이를 들들 볶으니 조카가 하는 말이 또한 송곳이였다. 차라리 아빠가 살고 엄마가 죽었어야하는데.

 

조카는 마흔이 다 됐는데도 장가를 가지 않고 즈그 엄마 속을 득득 긁어댄다. 속을 긁는 정도가 아니고 한번씩 원수지간보다도 못한 행동을 해댄다. 우리가 제사 지내러 가면 형님은 독기를 주렁주렁 매달고 즈그 아들 욕을 한다. 애증의 관계가 되었다. 엄마와 아들지간이.

자업자득!

 

어찌된 셈인지 고서방 형제중 둘째도 이년전에 세상을 버렸다. 둘째 형님집에 딸 둘, 아들 하나가 있는데 엄마에게 그럴 수 없이 잘 한다. 형님은 아즈버님이 안 계신데도 제사와 생신에 절대 빠지는 일이 없고 항상 그 마음씀이 애잔하고 진심이다. 그래서 나는 참깨 한 알이라도 형님에게 더 싸주고 싶은 마음이 비늘처럼 돋는다. 형님은 전에 상민이 아플 때 나보다 더 슬퍼하고 속상해하셨다. 지금도 상민이를 보면 형님 딸보다 더 좋아한다.

 

나는 이제 홀시아버지를 한 일년 모셨다. 기실 파고들어가면 모셨다는 단어는 적절치 않다. 솔직히 어머님은 매사에 까다롭고 구석기 시대부터 내려온 고부갈등이라는 인류학적 유전인자가 각자의 핏톨에 흐르고 있어서 벨로 잘 지내지 않았다. 딱,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경계에서 살았다.  동네 사람들은 지금도 나를 만나면 홀시아버지 모시기에 적응이 안된 얼굴 표정을 하며 내 손을 잡고는

"으이구...옛날부터 홀시아부지 모실래 비릉빡 기올라갈래 하면 비릉빡 타고올라가지 홀시아부지 안 모신다고 하는데 애 쓰네"하고 눈꺼풀을 꺾어가며 이야기를 한다. 그러나 나는 그 말이 싫다. 왜? 우리 아버님이 얼마나 좋으신데!

"아이고 아니라요 우리 아버님 같으면 세분 아니라 네분도 모시것어요. 괘안아요"

 

이장회의하면 다른 이장들 밥 먹으러 가면 나는 자전거 졸라 밟고 타고 와서는 퍼뜩 아버님 점심 차려드리고 다시 식당 가서 밥 먹는다. 상민이가 집에 있을 때는 상민이가 대신해줬는데 지금은 그게 안된다. 밭에 일하다가도 때가 되면 뛰어와야한다. 가끔 그게 안 될때도 있다. 조금 멀리가게 되어 점심 시간 때 못 올경우이다. 그러면 호랭이 고스방이 또 대신 차려 드리기도 한다. 그렇게 하다보니 고스방은 밥통에 밥이 없으면 자기밥 퍼고 밥을 새로 앉혀 놓기도 한다. 어머님 계실 때는 어림도 없는 일이였다. 고스방은 생이 점점 고단해지고 나는 그럭저럭 아버님 덕에 편해진다. 이걸 좋다해야하나 싫다해야하나? 당연히 좋지를. ^^

 

결론은, 홀시아부지 모시는 일이 비릉빡 맨손톱으로 기어올라가는 일보다 훨씬 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