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
무슨 영화를 볼라꼬 우린 이렇게 조질나게 바쁘게 사능가이 엉?
늦은 시간, 오카리나 연습을 마치고 집으로 오니 10시가 다 되어간다. 남편 먼저 보낸 꽃샘은 어버이날 하루를 위해 손가락에 쥐가나도록 카네이션 코사지를 만들고 작은 바구니에 오아시스를 썰어 넣어 꽃바구니를 만든다. 예전에는 쌀 서너되 들어가도 될만큼 큰 바구니에 꽃을 주문하던 사람들이 모두 작은 바구니로 선회를 하였다. 작은 바구니에 카네이션 화분을 넣은 것을 많이 사간다. 나는 옆에서 꽃구경하고 사람들이 사가는 바구니의 크기만 봐도 이즈음 사람 살이가 얼마나 팍팍한지 알아 낼 수 있다.
연일 새로 만든 포도밭에 일손이 매달려 있다. 그 와중에도 어제는 면민체육대회가 치뤄졌고, 나는 또다시 현역 씨름 선수가 되었다. 이제 쉰쯤 되면 은퇴할 때도 되지 않았나? 그러나 선수는 없고, 한번 선수는 영원한 선수이다. 서른 한 개의 마을이 있지만 선수를 고루 갖추기가 힘들기에 4개 마을을 합쳐서 초등, 중등, 청년, 장년, 여자, 이렇게 다섯명의 선수를 내보내는데 그나마도 동네마다 초등학생 사라진 곳이 한 두곳이 아닌지라 초딩 선수나 중딩 선수는 하나씩 빼먹고 조별 선수단이 급조 되기도 한다.
우리 마을도 초딩 학생이 없기는 마찬가지, 더군다나 씨름을 하겠다는 학생은 더 없다. 그래서 애타는 마음으로 지나가는 아이를 붙잡고 그냥 져도 좋으니 앉아만 있어도 참가 점수를 준단다 그러니 아가야 오늘은 니가 마산리 동민하렴 ㅎㅎ 다행히 상대방 팀에서 수락을 해줘서 경기를 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동네 4팀만 경기를 했다. 여자 선수들은 나이 불문 그냥 여자면 된다. 4팀밖에 출전을 안 했으니 첫 시합이 4강전이다. 중학교 선수는 없어서 상대방에게 기권승을 줘버렸고, 다행히 델구온 초등학생과 작은집 조카 병갑이가 할아버지 뵈러 가다가 나한테 붙잡혀 선수로 나가서 이기고, 여자선수로 내가 나가서 이겼다. 장년부는 지고. 그래도 3:2로 이겨서 결승진출.
바로 결승전이 또 시작되어 동네사람들이 모두 다 나와서 응원을 한다. 마산리 이장은 도대체 멀 먹어서 절케 힘이 쎄냐구..대단하다구 다들 한 마디씩 한다. 결승전에서 나는 열아홉 꽃같은 츠자와 경기를 했는데 그녀는 황간면 여자 씨름 선수다. 나도 질 줄 알았는데 어금니를 불끈 깨물고 옛날 옛적 울엄마 젖 빨아먹던 힘까지 기억해내서 2:1로 내가 이겼다. 병갑이는 상대팀에 지고, 역시나 델꼬온 초딩은 아슬아슬하게 버텨서 이겼다. 아직 기술은 없으니까 둘다 기진맥진할 정도로 샅바를 붙잡고 왔다갔다하다가 먼저 힘 빠진 놈이 넘어졌다 ㅎㅎ 여하튼 우리는 꿈에도 생각들 못한 씨름 일등을 먹어버린게다
이 글씨는 폰트 크기가 얼마야? ㅎㅎ
작은집조카, 나, 이렇게 두 명 출전했으니 상품도 두 개. 2년 걸러 한번씩 곰솥을 타니 우리집은 곰솥 부자. ㅋ
2인3각 경기까지 1등을 해서 우리동네가 31개 마을에서 전체 우승을 했다.
노인회장님이 우승기를 흔드신다 유후~~
우승컵 뒤에 얼굴은 가렸지만 환한 웃음은 보이지 않는가.
심심 촌빨날리는 동네의 우승이 뭐 큰 자랑이겠는가. 보릿대궁 여물기 전, 이렇게 가마솥 걸고 쇠고기 국을 걸게 끓이고, 너도나도 봉고차 짐칸 우에 올라 앉아 꾸버내는 정구지 부침개를 젓가락으로 뜯어 먹으며 촌사람들은 해 아래 한번 환하게 웃어보는 것이다. 날아가는 까마구도 내 술 한 잔 받아 먹고 가라며 벌씨로 검게 탄 손등을 힘차게 흔들며 건너건너 동네 대주 아부지도 부르고 민식이 삼촌도 부르는 날.
마른 먼지가 바람끝에 아우성처럼 일어나는 초등학교 마당
차일 아래 오보록히 앉아서 먼먼 옛일을 겹쳐 생각해내는 촌할매들의 느린 눈짓 사이로 하루해가 저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