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횃대 2012. 6. 6. 21:19

 

 

고스방이 참말로 무던한 사람이지, 저 베고 자는 베갯잎을 한 달이 넘어가도록 시쳐주지 않아 밤마다 베갯잎없는 알베개를 베고 자도고 암말하지 않는다. 빨래 걷은 것을 개킬 의욕조차 없어 한쪽 구석에 산더미처럼 쌓아두고 이부자리만 깔아주면 "저거 왜 저래 쌓아두노?" 묻지도 않고 따지지도 않는다. 그저 잠 잘 자리만 확보되면 구석구석이 지저분해도 잔소리 하지 않는다. 제몸은 기생오래비처럼 다듬어 나가면서도 이런 상황에는 눈을 닫는지, 그래서 내가 숨쉬기 좋다. 마음 내키면 정, 두고 볼 수없어 시야가 시원하게 한 번씩 치우면 그것으로 만족한다.

 

아이들이 다 나가고 달랑 세 식구가 되었다. 그래도 살림살이는 여전히 복잡하고 거미줄처럼 엉겨있다. 이즈음 내 머리 속은 생각이 없다. 그저 눈뜨면 밭에 갔다가 끼니 때가 되면 상 차려 한 술뜨고 또 밭으로 간다. 오늘은 오전에 풀 매며 흰콩을 심고 왔더니 몸이 천근의 쇳덩이보다 더 무겁다. 콩이고 풀이고 팽개치고 점심 먹고는 죽은 듯, 취한 듯 잠을 잤다. 꿈에도 나는 밥상을 걱정하고 좁아터진 방에서 옷을 만든다고 궁상을 떨고 있었다. 깨고 나니 답답한 꿈이다.

 

저녁을 먹고 아직도 덜 어두어진 틈을 타서 고추 옆순을 따러 간다. 낮에는 중놈 머리 벗겨지게 뜨겁더니만 저녁이 되니 선선하다. 이런 바람을 마주 하면 어데 약속이 잡혀 있는데 까먹었나...다시 생각해 본다. 그러나 약속은 몹쓸 동경이다. 때가 때이니만큼 약속이 있을리 만무하다.

 

내일도 해가 뜰 것이고, 서리태 모종 옮겨 심자면 비님이 좀 오셔야 하는데...하고 나즈막히 읖조리는, 좀 더 깊은 저녁!

 

                                                                         2012년 6월 6일    상순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