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요산문학관에서

황금횃대 2013. 1. 7. 20:39

 

고딩 동기 성자의 시아부지께서 돌아가셨다고 전갈이 왔다

마침 5일 부산에서 원무현시인 시집 출간 기념모임이 있어 어떡허면 거길 갈 수 있을까 목하 궁리중이였는데

하늘이 내게 연초부터 이런 복을 하사하시다니...ㅎㅎ아이고 좋아라

넘의 시아부지 초상이 돌아가신분에게는 대단히 미안하고 죄송하지만

내겐 부산 갈 수 있는 구실이 되는 일이였다.

곶감을 손질하면서 넌즛 내일 성자 시아부지 문상 갔다가 부산까지 내처 다녀오겠다고 말하니

이놈의 여편네는 맨날 나갈 궁리밖에 안한다고 한 마디한다.

그럼 그게 오케이 사인이다 ㅎㅎㅎ

 

그래 가려고 마음 먹었으니 새벽에 일찍 일어나 고스방 좋아하는 무우말랭이 무침과

돌김 간장 무침, 배추 속대국을 한 솥 끓여 놓구선 상민이까지 불러 내려 점심부탁을 완료하고 기차를 탔다

얼어붙은 날씨 탓인지 산천엔 눈들이 그득하고  적당히 따뜻한 기차 창가 좌석에 앉으며 코트를

기차 비릉빡 옷걸이에 걸고 앉을 때의 그 환한 기쁨이라니.

 

대구 영대 병원 장례식장에서 돌아가신분 얘기를 들으며 며느리인 그친구와 같이 점심을 먹고는

대구에 사는 다른 친구 둘이랑 그 옆 병실에 아들이 아파 병간호 중인 정민이를 보러갔다.

군대 갔다가 렙토스피란가 뭔가에 감염되어 죽을 고비를 넘긴 아들을 구완하느라 안 그래도 마른 정민이가 더 말랐다

보기에도 안스럽고 눈물이 왈칵 솟구친다.

두 달여간 기맥힌 꼴을 당하는 에미의 심정을 이야기하는데 뭐라 말로 할 수가 없다

 

 

 

겨우 커피 한 잔 마시고 정민이를 다시 병실로 올려 보내고 친정 집에 잠깐들러 엄마 아부지 보고

엄마가 깎아주는 사과와 단감,  배를 먹으며

이렇게 연락도 없이 불쑥 찾아와도

아무 탈없이 잘 지내시는 친정 부모님과, 칼국수 한 그릇 끓여 막내놈과 주거니받거니 후르륵 거리며 먹는

남동생과 여전히 티비에 코박고 있는 중3 문환이의 껑충한 모습들이

너무도 고맙고 대견하다.

 

부산으로 같이갈 카페 선생님들과 만나 부산으로 같다

물메기탕 식당으로 들어가니 많은 사람들이 그의 출간을 축하해 주기 위해 모였다.

 

기댄 신발들

 

 

이 설 야

 

 

친구의 약식 시집 출판기념회장 식당 입구와 신발장에

온갖 인생의 행로를 떠돌던 신발들이

부두의 선박들처럼 체온을 나누며 정박하고 있다

잠시, 술잔을 부딪히며 서로의 안부를 묻곤 하지만

자리가 파하면 가야할 여정이 다 다른 사람들

그래, 십 년 만에 만났어도 술 한 잔 나누면

순간에 좁혀지는 세월들, 하고 많은 사연들

누룩같은 만남도 서로가 살아있어 있는 것이거늘

다시, 우리는 강아지풀처럼 새록새록 힘을 낸다

가보자, 착한 세상이 우리를 보듬고 사는 것인지

부족한 우리가 세상을 조금이나마 위안하고 사는지

꽉 찬 신발들을 보니 우정도 사랑도 희망도 만선이다

 

원무현 시인의 친구 종문씨가 같이 참석했다가 지은 시다.

어이쿠, 시인의 감성은 참말로 특이하다^^

 

 

술 자리가 파한 후 요산문학관으로 자리를 옮겨 일박을 하고 아침에 까칠한 눈꺼풀을 밀어 올리며 기념 촬영

아직 술도 덜 깬 내과의사샘도 장기자랑을 하고

노래 한 자락 불러 보소 하면 군가 부를 때 취하는 반동 준비부터 먼저하는 통영 아짐매와

푸대같은 옷을 입고 먼지 풀석이며 아 콩, 아 콩, 아 콩, 콩밭 매에는 아나악네에야~로

고래같은 목청을 뽐내는 모자쓴 아지매와

숙취 쓴 허기를 밀어내며 환하게 웃기도 했네

 

참말로

오랜 만에

그리 웃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