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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소폭포

황금횃대 2013. 1. 22. 11:19

직소폭포

 

    안 도 현

 

 

  저 속수무책, 속수무책 쏟아지는 물줄기를 바라보고 있으

면 필시 뒤에서 물줄기를 훈련시키는 누군가의 손이 있지

않고서야 벼랑을 저렇게 뛰어내릴 리가 없다는 생각이 드오

물방울들의 연병장이 있지 않고서야 저럴 수가 없소

 

  저 강성해진 물줄기로 채찍을 만들어 휘두르고 싶은 게 어

찌 나 혼자만의 생각이겠소 채찍을 허공으로 치켜드는 순

간, 채찍 끝에 닿은 하늘이 쩍 갈라지며 적어도 구천 마리

의 말이 푸른 비명을 내지르며 폭포 아래로 몰려올 것 같소

 

  그중 제일 앞선 한 마리 말의 등에 올라타면 팔천구백구

십구 마리 말의 갈기가 곤두서고, 허벅지에 핏줄이 불거지

고, 엉덩이 근육이 꿈틀거리고, 급기야 앞발을 쳐들고 뒷발

을 박차며 말들은 상승할 것이오 나는 그들을 몰고 내변산

골짜기를 폭우처럼 자욱하게 빠져나가는 중이오

 

  삶은 그리하여 기나긴 비명이 되는 것이오 저물 무렵 말발

굽 소리가 서해에 닿을 것이니 나는 비명을 한 올 한 올 풀

어 늘어뜨린 뒤에 뜨거운 노을의 숯불 다리미로 다려 주름

을 지우고 수평선 위에 걸쳐놓을 것이오 그때 천지간에 북

소리가 들리는지 들리지 않는지 내기를 해도 좋소 나는 기

꺼이 하늘에 걸어둔 하현달을 걸겠소

 

 

- 안도현 시집 『북항』(문학동네, 2012. 5)

 

이 년전인가 삼 년전인가 그녀는 불쑥 동네 배꾸마당 등나무 쉼터 아래서 전화를 건다며 나를 찾아왔다

온라인에서 알게 된(나는 전혀 모르는데 그들은 나를 안다 ㅎㅎ) 나를 경부선 오르락내리락하며 문득 궁금의 실체를 알고 싶을 때 내려오는 황간톨게이트.

길지않는 길을 밟으면 금방 도착하는 상마산리 배꾸마당, 낡은 회관터.

포도를 사러왔다고 했다. 신나는 밥상이라는 사이트에 회원인데 거기서 글을 읽고 찾아왔단다. 포도 세 박스를 실어주며 그녀의 전화번호를 저장해두었다.

그녀는 부산에서 주유소를 한다고했고, 내 폰에는 부산주유소아지매라고 저장이 되었다.

 

그 후년에도 그녀는 포도주문을 하여 내가 택배로 보내주면 꼭 포도값보다 더 많은 돈을 부쳐왔다. 그래 난 그게 미안해서 따금씩 엽서를 보내고, 또 잊어 먹을까바 목소리 들을려고..하며 전화를했다. 나의 이런 대시에 그녀는 좀 놀라운 눈치다. 그러나 차츰 익수해져갔다. 지난 여름에도 그녀는 포도를 주문했고 마찬가지 넘치는 금액을 솜금했다. 그게 미안해서 나는 고구마와 땡감을 조금 보냈더니 그녀는 엄청난 양의 책을 보내왔다. 지난 총선을 거치면서 알게된 나꼽살, 우석훈, 그리고 안도현의 시집, 세계의 명시, 한국의 명시..이런 책이다. 그 중에 안도현 시집 북항.

 

옛날엔 안도현 좋아해서 시집을 꼭 사봤다. 그러나 시를 놓고 사는 날이 많아졌다. 맨날 사는게 시다`라며 씰데없는 소리만 주끼대다가 시? 그러구 살았다. 그런데 그런 내게 시집을 보내 준 그녀, 그것도 다시 안도현으로. 책상과 책을 옮기면서 그 책박스도 덩달아 옥상 방으로 올라갔다. 이즈음 곶감 작업하다가 허리한번 씩 펴고 누울 때 곁에 땡겨서 보는 시집 <북항>

저 직소폭포를 읽고 몸을 벌떡 일으킨다. 내 눈에 그가 삼국지의 한 장면처럼 물방울 군단을 이끌고 내변산 꼴짜기를 폭우처럼 자욱하게 빠져나가는 모습이 보인다. 한 편의 시에서 한 편의 소설같은 장대함을 느낀다.간만에 시로 인해 몸서리친다. 으흐..좋구나.!

 

쌩유 주유소 아짐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