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늘밭
1.
병조가 제대를 하고, 상민이가 일년의 자취 생활을 끝내고 짐 싸들고 졸업과 동시에 집으로 다시 들어왔다
우리집은 예전처럼 북적거리는 오인 가족 형태를 되찾았다.
일년 동안 집 밖 생활을 한 아이들의 컴백홈은 어마어마한 박스를 더불어 들여오는 일이다
옷부터 시작하여 자잘구레한 것은 말할 것도 없어 심지어 없던 세탁망까지 세 개로 불어났으니, 찌질한 살림살이 불어난 거야 말해 무엇하랴
씽크대 밑부분은 냄비와 후라이판이 넘쳐나고, 플라스틱 제품은 알록달록 또 얼마나 늘어났는지, 거기다 잘 쓰지도 않는 빗자루까지 식구수를 불렸다.
그러니 좁아터진 집구석에 수납은 극한 상황에 이르렀고, 드디어는 어머님 돌아가시고 아버님 서운해 하셔서 못 치운 어머님 옷가지를 모두 박스에 담고
아버님께서 입으시던 옷도 오래된 것과 작아서 못 입으시는 것은 라면박스로 모두 들어가 뒤안으로 옮겨졌다. 그러고 정확히 이틀 뒤, 아버님은 무슨 서운함이
있으신지 아수움이 있으신지 새벽 다섯시 반쯤 홀로 통곡하시는 울음소리가 정지간까지 새어나왔다 허참, 그것 참.....옷 치울 때 미리 말씀을 드렸었는데...쩝
상민이는 일년을 공뭔시험 준비를 해보겠다고 이리저리 알아보고는 옥상 방으로 노트북을 들고 독서실 책상까지 즈그 외갓집에서 가져와 올라갔다. 아늑한 내 옥상방은
상민이 차지가 되었다. 나도 저녁밥을 먹고 나면 올라가 일기를 쓰고 가계부를 정리하고 야위어가는 통장 잔고를 눈여겨보며 재정상태를 심도있게 고심하기도 한다. 거기 배깔고 누웠으면 아래로 내려 오기가 싫다. 아래로 내려오면 일년을 휴학해서 뭘 좀 이것저것 경험해보겠다고 휴학한 예비군 고병조가 스맛폰을 들고 종일 잉여짓하는 광경을 목격하게 된다. 제대해 이제 일주일 겨우 지났는데도 그 꼴 봐주는게 어찌나 눈이 시그럽던지 놈을 보면 일을 시킨다. 병조야, 쓰레기 좀 분리 해 줄래, 포도밭에도 가야하는데, 병조야 청소기 좀 돌려라...하여간 주문은 끝이 없이 이어지는데 놈은 꼼짝않고 대답만 넙죽넙죽 해대는 것. 그러면서도 살 쪄야 한다고 사이사이 어찌나 먹어쌌는지, 씽크대 개수대는 돌아서면 빈그릇이 쌓이고.. 입씨름 하다가 하루 해가 다 진다.
어제는 드뎌 포도밭에 일이 시작되었다. 산비얄 응달엔 살얼음이 아직 녹지 않고 있건만 포도밭에는 한 눈에 봐도 햇살 그윽한 향기가 사방에 퍼져있어 금새라도 포도가지가 녹은 물을 빨아 올릴 듯 말갛게 서있는 것이다. 어제 오후에 아들 앞세우고 고스방과 나는 전지를 하러갔다. 묵은 가지를 잘라내는 일이 포도농사의 첫 일이다. 묵은 가지를 잘라내서 묶어 내고, 거름을 내고 비닐을 덮고 ....그렇게 포도일이 시작되는 것이다. 작년에 새로 심은 포도밭은 이년생 포도나무로 가기 위한 수순을 잘 밟아 가고 있다.
2.
해마다 마늘값이 비싸서 사 먹을 때마다 손이 오그라 들었었다. 그래 작년 겨울에는 시집 오고 첨으로 마늘 석접을 씨마늘 장만해서 마늘을 심었다. 소똥 거름을 넉넉히 뿌리고 포슬포슬한 푸대 퇴비도 섞어서 연지아빠가 로터리를 쳐주고 망을 다듬어 주어 거기다 마늘을 심고 콩깍지와 왕겨를 덮어 두었는데, 오늘 첨으로 마늘 심어 놓은 가마골 밭에 가 보니 어쩐 일인지 마늘이 모두 땅 바깥으로 나와서 허옇게 드러누워 있다. 눈이 오고 비도 자주 와서 얇게 덮어 놓은 흙이 밑으로 다 쓸려 내려갔나보다. 호미를 찾아서 다시 마늘 대가리를 꾹꾹 눌러 넣으며 흙을 덮어 준다. 꽝꽝 얼었다 녹은 흙들이 푸슬푸슬 덩어리를 풀고 흩어지는 것을 보니 마음이 밝아진다. 농사꾼이 이렇게 되어가는 것이구나..팥고물처럼 부들부들한 흙을 손으로 만질 때의 느낌이란 비단 만질 때와는 또다른 느낌이라. 이걸 말로 어찌 표현을 하랴. 직접 만져봐야 살아 있는 느낌을 고대로 느낄 수가 있는 것. 구부린 허리 우에로 오후 두시의 덜 익은 봄볕이 투닥투닥 떨어지는데, 그 따스한 느낌 또한 먼 발치에서 바라보는 양지의 느낌과는 사뭇 다른 것. 이렇게 한 해 농사가 시작되고 있다.
마늘농사가 잘 되야 할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