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횃대 2013. 5. 31. 21:32

아버님이 변비가 심하셔서 그 가기 싫어하는 병원을 어제는 제발 입원 좀 시켜주라 하신다. 식전에 가마골 감나무 밭에가서 짧게 땅콩 한 골 모종삽으로 심어놓고 집에 와 아침 챙겨 드리고 입원 준비물을 주섬주섬 챙긴다. 아버님은 돌아가신 어머님 속옷 몇 벌을 태우지 않고 주무시는 머리맡 서랍장에 차곡차곡 챙기리 넣어 놓았는데, 오늘 아침은 새삼 그 서랍을 열어 안계시는 어머님 보듯 치어다보며 작별 인사를 한다. 달리 말씀은 없으셔도 그걸 물끄러미 바라보며 고개 수그리고 있는 모습이 내 눈에는 그리 보인다.

 

오전에서 오후로 넘어오는 동안 아버님은 혈액 투석을 하신다. 투석실 안에는 투석 병상이 스무개도 넘게 있는데 1차 투석 시간에는 그 많은 병상이 투석환자로 가득 찬다. 너나없이 붉은 피가 둥글게 둥글게 두 바퀴 돌아 몸에서 나왔다가 다시 몸으로 들어간다. 세시간, 혹은 네 시간여를 병상에 가만히 누워 있기란 쉽지 않다. 그렇게 투석하고 나와 간단하게 점심을 먹는다. 병원 밥이지만 아버님과 마주 앉아 먹는 밥은 맛있다.

 

투석이 끝나고 입원실로 옮긴다. 한 병실에 여섯명의 환자가 있는데 한 명의 간병인이 모두 돌봐준다. 대신 간병비를 1/N로 계산하는 것이다. 아버님은 보행이 가능하시지만 혹시나 싶어서 간병인이 있는 병실을 택했다. 아흔 둘, 그 기간을 사시면서 첨으로 간병인의 도움을 받으시는지라 익숙하지 않다. 누누히 간병인이 있으니 도움을 받으시면 된다고 말씀을 드리지만 이해가 안 되는거 같다.

 

일곱시가 넘어 병원에서 돌아와 부엌을 들여다본다. 무슨 모임에 가든 행사에 가든 아버님 끼니 챙겨드리는게 최고 급한 일이였다. 일하다가도 헐레벌떡 들어오자마자 소매 걷어부치고 상 차리는게 내가 해야 할 일이였다. 그런데 아버님이 이제 병원에서 저녁을 드시고, 고스방은 모임에서 저녁을 먹는다하고 딸아이는 친구와 만날 일이 있어 저녁을 먹지 않는단다. 시집오고 스무 네해를 살면서 집에 있으면서 저녁을 안 차려보기는 첨이네. 아무리 아파도 일어나서 식사 준비를 해야했는데. 내게도 이런 시절이 오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