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횃대 2013. 7. 27. 19:17

 

 

 

 

 

빗방울, 그 둥근 꽃

 

 

전향

 

저녁이 되면서

밝았던 하늘 차츰 흐려지더니

여기저기 내려서는 빗방울을 본다

 

마른땅 위로는

튀어 오를 듯 날카로운 화살로 뛰어내리더니

차츰 젖어들면서

부드러워지기 시작하는 빗방울

 

아주 얇고 작은 웅덩이

하나라도 땅 위에 심어지면

빗방울은 뿌리 내리지 않아도

금방 둥근 꽃을 피운다

 

처음으로 이 땅에 와서 땅을 파고

그 땅으로 돌아간 이들처럼

단단한 땅 위에

먼저 와 드러누운 제 형제들 위로

날카롭게 내려

꽂을 수도 꽂힐 수도 없으므로

곤두박질하듯 떨어져 깨어진

그 자리자리마다

둥글게 꽃을 피운다

 

 

<그 빛을 찾아간 적이 있다> 2012  현대시 시인선

 

*포도 봉지싸고 나니 한갓진 시절이 왔다.

새벽같이 나가지 않아도 되고, 번갯불에 콩을 볶듯 호닥거리지 않아도 된다

일어나는거야 매번 그 시간이지만, 베개 끌어 안고 잠시 밍그적거릴 시간도 주어지고

늦은 밤 옥상 돗자리에서 일기 쓸 시간도 주어졌다.

바느질 붙잡고 있을 여유는 아직 없지만 그래도 도서관 가서 시원한 책상에 앉아 엽서 그림 그릴 여유는 한 번씩 생겼다

아침 나절에 들깨밭에 지심을 매고, 익은 토마토며 가지를 따서 오고

뒷마당에 떨어진 낙엽을 쓸어 훤한 장독간에서 간장이며 된장이 어떻게 숙성되어가는가 오짓독 뚜껑 열어 볼 시간도 생겼다.

운동을 해서 어깨가 벌어지고 팔뚝이 굵어진 아들놈 몸도 한 번씩 보며 흐믓해 할 짬이 생겼으며

무엇보다 시집을 꺼내 시를 읽을 수 있는 황금의 시절이 온게다.

멀리 떨어진 지인에게 엽서를 쓰고

친구들에게 안부를 묻는 전화를 한다.

애인에게 내 꼴을 찍은 사진도 보내고 ㅎㅎㅎㅎ

 

그렇게 여름이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