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빗방울, 그 둥근 꽃
전향
저녁이 되면서
밝았던 하늘 차츰 흐려지더니
여기저기 내려서는 빗방울을 본다
마른땅 위로는
튀어 오를 듯 날카로운 화살로 뛰어내리더니
차츰 젖어들면서
부드러워지기 시작하는 빗방울
아주 얇고 작은 웅덩이
하나라도 땅 위에 심어지면
빗방울은 뿌리 내리지 않아도
금방 둥근 꽃을 피운다
처음으로 이 땅에 와서 땅을 파고
그 땅으로 돌아간 이들처럼
단단한 땅 위에
먼저 와 드러누운 제 형제들 위로
날카롭게 내려
꽂을 수도 꽂힐 수도 없으므로
곤두박질하듯 떨어져 깨어진
그 자리자리마다
둥글게 꽃을 피운다
<그 빛을 찾아간 적이 있다> 2012 현대시 시인선
*포도 봉지싸고 나니 한갓진 시절이 왔다.
새벽같이 나가지 않아도 되고, 번갯불에 콩을 볶듯 호닥거리지 않아도 된다
일어나는거야 매번 그 시간이지만, 베개 끌어 안고 잠시 밍그적거릴 시간도 주어지고
늦은 밤 옥상 돗자리에서 일기 쓸 시간도 주어졌다.
바느질 붙잡고 있을 여유는 아직 없지만 그래도 도서관 가서 시원한 책상에 앉아 엽서 그림 그릴 여유는 한 번씩 생겼다
아침 나절에 들깨밭에 지심을 매고, 익은 토마토며 가지를 따서 오고
뒷마당에 떨어진 낙엽을 쓸어 훤한 장독간에서 간장이며 된장이 어떻게 숙성되어가는가 오짓독 뚜껑 열어 볼 시간도 생겼다.
운동을 해서 어깨가 벌어지고 팔뚝이 굵어진 아들놈 몸도 한 번씩 보며 흐믓해 할 짬이 생겼으며
무엇보다 시집을 꺼내 시를 읽을 수 있는 황금의 시절이 온게다.
멀리 떨어진 지인에게 엽서를 쓰고
친구들에게 안부를 묻는 전화를 한다.
애인에게 내 꼴을 찍은 사진도 보내고 ㅎㅎㅎㅎ
그렇게 여름이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