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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바쁜 시절에
황금횃대
2013. 9. 4. 21:03
이 바쁜 시절에
무슨 지랄로 지역사회건강조사원이란걸 지원해서
노트북을 짊어 지고 틈만 나면 설문 조사를 하러 다닌다.
한참 바쁜 시절이라
고추 고르는 할아버지 옆에 쪼그리고 앉아 질문을 하고
답을 노트북에 기입하고 있으면
젊은 그 집 아들이 지나가다
이 바쁜데 저거뜨리 뭐 하는 짓인고 하는
마뜩찮은 눈길로 나를 깔아본다.
나는 그 때 아버님을 판다
우리 아버님 아시죠? 예전에 택시 하시던 고씨 할아버지
황간에서 산 사람들이라면 다들 시아버지를 안다, 아하~
그래도 젊은 놈은 꼬장한 눈길을 바로 펴지 않고
나를 깔아본다. 그러기나 말기나
나는 상냥한 목소리로 설문 내용을 설명한다.
고스방은 연신 전화를 해대며
내게 뭘 지시하고 싶은데 내가 집구석에 없으니 짜증 지대로 내고
그 때마다 나는 어금니를 꽉 문다
포도일도 서너번만 꿈지럭 거리면 끝날 것이고
설문 조사도 시월 말까지 죽으라 댕기다보믄
그 일도 끝이 보일것이니
너무 힘에 겨워 쳐지지 말자.
이렇게 나를 위로 하는 저녁.
달달한 포도 한 송이 순식간에 뜯어 먹으며
당보충을 해준다
내 인생 어느 한 귀퉁이에 생길 뻔한 주름 한 자락
순식간에 지우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