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이 다 나더라구
<아들놈 군대 갔을 때 난닝구바람으로 편지 쓰는 고스방>
어젯밤 늦은 시간까지 옥상 지붕땀말래이에 올라 앉아 고추 말린 걸 골라서 바작바작 마른 것은 비닐 봉다리에 담고 덜 말려 눅눅한 것은 따로 골라 다시 말리는 채반에 늘어 놓는데, 그것도 한 시간 넘게 하니까 허리가 아파.
고스방은 낮에 내가 따서 씻어 물기 가신 물고추를 건조기 채반에 날라름하게 담아서 칸칸히 기계 속에 집어 넣는 일을 하고. 그렇게 부부가 고추 일에 매달려 어지가히 집어 넣을거 다 넣어 놓고는 옥상 방에 들어가 잠시 허리를 펴고 누웠었다. 고스방이 마누래가 방에 들어가니 맨날 자는 방하고는 분위기가 다른 옥탑방에 따라 들어왔다. 들어오자 마자 낡은 티비에 전원을 넣으며 여편네 옆에 따라 눕는다. 지난 여름 때부터 고스방은 성기능이 많이 저하되어서 고민이 컸었다. 나는 위로랍시고 "나이 묵으마 다 그렇지 그걸 가지고 맨날 와 그래 징징 짤아쌌는교"하면서 대수롭지 않게 말했는데도 불구하고 고스방의 생각은 달랐다. 인생은 그게 서고 안 서고에 따라 경계가 그어진다면서 맨날 보약타령을 했다. 그래 지난 겨울은 중국 동인당 한약방까지 가서 제발 그것이 벌떡벌떡 잘 서도록 온몸의 기능을 활성화 시켜 준다는 환약도 세 통에 팔십일만원이라는 거금을 주고 사서 먹었는데, 그 약이 아직도 플라스틱 통 속에서 달그닥 소릴 내면 남아 있는 것으로보아 벨로 신통방통한 효험을 못 보고 있는 모양이다. 그러나 고스방이 누군가? 천하에 팔랑귀가 아닌가. 어데서(그래봐야 스포츠신문 광고면)좋다카는 건강 식품만 보면 좀 먹어 보면 나을랑가 싶어 입맛을 쩝쩝 다시는 것이다.
옥상방에 따라 들어 온 고스방, 작년 여름을 회상한다. 작년 여름은 옥탑방을 짓기 이전인데, 하도 날씨가 더워 감타래 밑에 야외용 텐트를 쳐 놓고 거기서 열대야의 길고 긴 밤을 건넜다. 닫힌 공간 보다 트인 옥상 텐트에 잘 때 마누래한테 수작을 걸면 어데 물한 계곡 민박집에 온 기분이 든다고 하더니만, 그 땐 텐트 속에서 마누래한테 거는 수작이 통했다. 그래서 고스방이 기분이 좋아 히죽히죽 웃으며 하는 말이, " 땅순아, 나는 실내용이 아니고 야외용인가벼. 바깥에 나오니 훨씬 잘 되네 히히" 아, 예에~~ ㅡ.ㅡ;;
그 때부터 고스방은 야외용이 되었다. 속으로 진짜 야외 나가서 맨날 저러면 어떡하나 저으기 걱정도 됐지만, 짜드라 걱정을 안 하기로 했다. 그럴 시간도 없거니와 그럴 형편은 더더욱 안 됐다. 만일 야외용 확인을 위해 시도를 했다면 독사같은 여편네가 고개를 쳐들고 바짝 대들면 할 말도 없거니와 괜히 약점 잡힐 일이 뭐가 있나 하는 심사였을게다.
야외용 고스방이 어제밤에는 실쩍 내 옆에 누워 신세 한탄을 하였다. "아이고, 사는기 맨날 왜 이러누, 눈만 뜨만 새벽에는 고추밭에 가서 풀 깎아야지, 고추 따야지, 밥 먹을 시간도 없어 물에 말아 씹도 않하고 밥띠꺼리를 들이키고 나가면
하루 일당 벌어야지, 상순이 포도 실어 날라주야지, 땀은 왜 그래 푸지게 줄줄 흐르는지..똥도 한참에 다 눌 시간이 없네. 그래 오늘은 똥도 세 번이나 나눠서 눴다구. 저녁에 들어오면 고추 씻어 건조기에 넣어야지..참말로 빡빡하네. 가마히 생각하면 내 사는게 왜 이런가 싶어 눈물이 다 날라구 그래.
그러면서 돌아눕는 고스방의 옆얼굴을 본다. 검게 그을은 얼굴은 말 할 것도 없고, 희게 쇠어가는 수염에 세월의 주름이
두어겹 잡혀서 고스방 살아 온 모습이 한 페이지에 모두 집결하였다. 그냥 말 없이 바라본다.
측은지심, 생활비 받아 낼 때야 땡삐같이 조목조목 울궈내지만 이런 날, 야외용 고스방을 바라 보는 일은 쪼금 짠허다.
짐짓, 한 옥타브 올린 명랑한 목청 한 올 골라 낸다. "어깨 주물러 주까요?"하고 고스방 등을 돌려 눕히면서 그 어깨에 얹힌 지난한 세월의 무게를 투박한 내 손으로 툭,툭 쳐낸다.
"쫌 시원항교?"
ㅎ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