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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를 보내는 법

황금횃대 2014. 1. 2. 20:52

 

 

멀리 있는 친구놈이 즈그 회사 다이어리를 보내왔다. 그걸 받아 년중 기념일을 음력 계산해서 칸마다 적어 넣으며 올해도 일기를 착실히 써야지 다짐을 하는 것이다. 써봐야 맹 그날이 그날인 것을. 이즈음엔 저녁에 일기 쓰려고 공책을 펼쳐 놓으면 설령 특별했던 일이 낮에 있었어도 까마득히 생각이 안 나는 것이다. 그저 오늘도 아침 먹고, 설거지하고, 빨래를 돌렸다를 신문 헤드라인처럼 매번 뽑아 놓는 것이다.

 

아흔 셋을 이제 마악 거머쥔 아버님도 나랑 동선이 단조롭기는 마찬가지다. 방에 들어가서 누웠다가 그것도 허리 아프면 마루로 나와서 티비 리모컨을 누르고 습관처럼 볼륨을 올리는 것이 하루 생활의 모습 다다. 그러다 해질녘에는 그것조차 서글픈지 서까래가 내려 앉도록 한숨을 내쉰다. 그럼 나는 방에 오두마니 웅크리고 앉아 해그름으로 내려 앉은 아버님의 기운 어깨가 눈에 훤히 보이는 풍경인듯 내 늙은 어떤 날을 예견하고 진저리를 치는 것이다.

 

밤이 되고 감타래 포장이 바람에 휩쓸려 거친 숨소리를 꽈릉꽈랑 토해 내면 티비를 틀어 놓고 고스방은 아버지와는 다른 우렁찬 코골이 함성을 뿜어내며 잠들고, 가끔 그 소리에 놀라 깬 아버님이 어둠 속에서 스뎅 요강 뚜껑을 열고 가녀린 오줌 줄기 떨어지는 소릴 받아 내는 그림자를 한 폭 문 뒤에서 세세히 받아 적는 날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