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자 존 놈
병조가 제대하고 휴학한지 이제 일 년이 다 되어 간다.
녀석는 비리비리한 몸뚱아리를 핑게 삼아 일 년 삼백 육십일을 오로지 몸 만드는데 바쳤다.
개밥통 같은 헬스장 보충제를 사는 것부터 시작해서
헬스 장갑, 헬스 티셔츠 만들기(멀쩡한 반팔 티 소매 잘라내고 민소매 티 만들기)등
몇가지의 미션을 착실히 수행하더니 지난 12월에는 좀 더 나은 PT를 받아야한다며
석 달 군청 알바한 돈을 가지고 대구로 튀었다.
제 몸 만드는 건 좋다마는 그 집 식구 일곱에 독서실 간다고 보탠 상민이까지
친정 올케는 한 달 내도록 제 공부와 더불어 아홉 식구 밥 해먹이니라고 쌩똥을 쌌을거다.
거기다 병조는 운동하고 또 밥을 먹는다고 하루 다섯끼를 먹어 댔으니
참말로 부처님 가운데 토막을 딴데서 찾을 이유가 없다.
그러면서도 간식 사다대고 사흘에 계란 한 판씩을 먹어대는 녀석의 단백질 보충에
혀를 휘휘 내둘렀다. 그래도 싫은 내색 한 번 내질 않았다.
"엄마, 우리만큼 외갓집 자주 가는 사람도 드물겨"
즈그들도 인정하는 외갓집 출입횟수.
고만고만 애기같던 조카들도 이제 대학생이 되고 고2에 중3이 된다.
며칠 전 포도밭둑가에 부려 놓은 소똥거름을 해야 한다고 고스방이 병조에게 전화를 했다.
한 달 PT도 끝났고 이제 복학도 해야하니 밍기적거리며 외갓집에 머무를 이유가 없어졌다.
도살장 끌려 가는 황소처럼 대가리를 떨구며 병조는 짐을 싸들고 집으로 왔다.
오자마자 포도나무 전지를 하고, 전지한 나무가지를 가지런히 챙겨서 밭둑가로 들어내고
그러자니 신발은 진흙 투성이에다 끌어내리는 포도나무가지에 금쪽같이 여기는 얼굴도 긁히고
힘은 들고 하기는 더더욱 싫고
그래도 즈그 아부지 무서워 어쩔 수 없이 일을 한다.
어제는 또 큰 포도밭에 소똥 거름을 냈다.
친정아부지, 고스방, 병조, 나까지 넷이서 점심 먹고 시작해서 깜깜하도록 거름을 뿌렸다.
셋이서 전동손수레에 거름 실어서 뿌리고, 나는 혼자 노랑 외발 구르마에 거름 실어서 뿌리고
우리 포도밭 밑에 거봉 포도 농사 짓는 아저씨가 비닐하우스 보수하러 왔다가 나를 보더니 혀를 찬다.
"아이고 여자가 우째 거름 구르마를 끌어요. 그냥 슬슬 퍼담아 주기만 하고 구르마는 젊은 아들놈 시키지"
"하이고, 아들놈이 똥구르마 끌 정도면 내가 걱정이 없지요."
밭둑가에 벗어 놓은 장갑이 안 보일 정도로 깜깜해져서야 집으로 왔다.
반찬도 마뜩찮아 대충 손씻고 후다닥 골뱅이무침을 한다.
밥 한 숟갈 떠먹고 허리아프고 춥다면서 녀석은 씻고 이불로 누에처럼 똘똘말이를 해서 누웠다.
복학하면서 전공과목도 바꿔야한다는데 제 머리속에 무슨 구상이 들어 있는지
그게 나은 길인지 어쩐지...걱정이 많은데
녀석은 팔자좋게 잠이나 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