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그런건가
농사꾼들은 한 여름 땡양지에서 농사 지을 땐 하는 일이 고되서 없던 턱선도 살아나고, 옆구리 선도 슬쩍 윤곽을 드러내
아주 애초부터 허리선이 없었던 사람이 아니라는걸 그 때 증명한다.
손바닥과 손등과의 채도 차이는 극에 달해 예전에도 말했듯 어쩌다 도시나가 버스 손잡이를 잡을라치면 옆에 아지매 손등이랑
너무나 비교가 되서 슬몃 부끄러워지기도 하였었다.
그러나 겨울이 되면 다르다. 새까맣다 못해 반질반질 윤까지 나는 얼굴들이 조금씩 검은빛을 벗겨내고, 김장김치며 고구마며
곶감에 홍시에 먹을 새 없이 우겨박아 놓았던 냉동실 떡까지 짬짬히 쪄먹다보니 알게모르게 살이 붙어 더러는 얼굴형이 확
달라지기도 한다. 그런 예를 멀리 찾을 것도 없이 바로 우리동네 내집에서 찾으면 되는 것
나는 그야말로 살이 어찌나 붙었던지 누운자리에서 꿈틀거릴 땐 발도 손도 없는 애벌레같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아이고 맙소사.
작년에 사놓은 자전거에 올라 탔다.
어데 솔깃한 소문으로는 매일 자전거를 타면 나잇살까지 뺄 수 있다는 기막힌 소식도 들은터이다.
엉덩이가 아파 대번에 뽕이 빵빵하게 누벼진 자전거 속바지도 사고, 한 이틀 타보니 손끝이 너무 시려 또 쭝국산 보온 장갑도
주문해 놓았다. 손가락 열개 가운데 유독 오른손 네째 손가락이 떨어져 나갈 듯 시렵다. 한 이십킬로는 되려나
우리집에서 출발하여 완정리 거쳐 우매리 시작되는 곳까지 다녀왔다.
반야사까지는 날씨가 조금 우그러지면 갈 예정이다.
아들놈 때문에 머리 속은 복잡아도 맵싸한 겨울 바람에 볼때기가 떨어져나갈 것 같이 칼날 바람이 지나가면 외려 정신이 짱짱
해지는 것이 추위와는 또다른 환희를 제공한다. 그래 집구석이야 시끄럽던말든 겨울 날씨는 이래줘야 제맛이지.
석천을 따라 페달을 힘차게 밟는다.
얼어붙은 강물들이 서로 너무 힘차게 엉겨붙었는지 가끔 부딪혀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난다. 산 우에서는 돌멩이들이 떨어져
얼음 위로 투닥투닥 떨어지고. 파문도 없는 얼음판 우에 저 돌멩이들은 무얼 얻기 위해 저토록 혼신으로 굴러 떨어진단말고.
상민이도 책가방싸서 도서관으로 일찍가고, 아버님은 병원에서 점심을 드시고 오고, 나와 고스방 점심만 해결하면 되는데
김치와 삼겹살을 볶아 김치볶음밥을 한 보시기 담아 먹는다. 아들놈 걱정이 되면 그 밥이 차마 목구멍에 넘어가겠냐마는
우찌된 셈인지 나는 목구멍을 잘도 넘어가가 심지어 맛있기까지 한다.
니 인생은 니가 사는거고, 니가 결정을 해 오면 나는 부모된 자격으로 뒷바라지 해주면 되고, 나는 미주알고주알 관여할 생각이
없는데 고스방은 또 생각이 다르다. 그래서 눙깔을 부릅뜨고 아들의 인생에 괌을 질러대고 있다. 그러면서 하는 모든 책임은
나에게로 떠넘겨진다. 결혼하고 육개월 뒤 쌈 한 판 붙으며 묻기 시작한 물음을 또 하고 있다. 어이 고스방 내가 뭘 그리 잘못했노?
그래, 원래 그런거다. 잘 하면 제탓, 못하면 마누라 탓.
오냐 니똥 굵다. 그러니 김치 볶음밥 두 그릇 잡솨.
굵은 똥 누려면 많은 밥 먹어야 하지 않겠슴둥?
우린 둘다 부모나 선생으로부터 제대로 된 대화법을 배우지 못한 지라 그렇게 악다구니로 눙깔을 희번덕거리느니라니라니라니라
하루 종일 녀석은 연락 한 톨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