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횃대 2014. 4. 23. 22:12

 

 

 

1.

지난 사월 십오일에서 십칠일은 제주에 있었다

내 시집오고 첨으로 동네 부녀회 회원들이 여행경비를 곗돈 붓듯 넣어

순희형님이 강력 추천하여 동네분 형님 열여섯에 순희언니 친구 서이 보태서

열아홉이 제주도 여행을 간 것이다.

 

평생 소밥 때문에 여행 한 번가는게 큰 부담이던 수미형님도

그 흔한 자전거도 못타  농로길이 마르고 닳도록 걸어다니던 이태식씨 아줌마도

식당 다니는 영직이 엄마도, 노래방 문을 닫아 걸고 전 군위원 부인도

모두모두 한 마음으로 여행을 갔었더랬다

첫날은 새벽에 출발하느라 이것저것 집구석 소용거릴 장만해놓고 가느라

다들 첫닭 울자 준비했으니 얼마나  피곤했겠는가

뚜껑 열리는 나이트에 가자고 누군가 외쳤지만 모두 고개를 돌리고 여덟시 반부터 잠자리에 들었다.

 

둘째날 아침, 우리가 묵은 호텔 아침식당에도 수학여행 팀은 있었다

새파란 코발트색 슈트를 걸친 인솔 교사가 학생들이 빨리 밥을 먹을 수 있도록 관광객 사이들 누비며

아이들을 독려했다. 그 때까지도 우린 아무런 징조를 느낄 수 없었다.

 

애월에 가서 한림 공원을 한 바퀴 돌고 점심 먹으러 가서야 그 소식을 들었네

그래도 이렇게까지 참담할 줄은 꿈에도 생각못했다.

저녁이 되어 식당에서 티비를 마주 보고서야 사태가 최악임을 알아차렸다.

 

2.

제주 오설록 건물 비릉빡에 걸린 그림

뒷고샅에 사는 이태식씨 부인이 그 앞에 서서 사진을 찍었다.

그집 이야기도 책으로 쓰면 30부작 다큐멘터리다.

그러나 보여지는 일상은 매번 같은 풍경이다. 저 형님이 가리개가 달린 농약방 모자를 동여매고

비닐 봉다리에 호미나 씨앗을 담아서 농로를 걸어가거나, 하나로 마트에서 소용거리를 사서는

열심히 금상교 다리를 건너온다던지..하는 풍경.

나는 이 형님댁 비얄밭에 머구를 봄에 맛나게 뜯어 먹고 아저씨가 키우는 흑염소처럼 뜻도 없이 메헤헤에~~하고 울음 소리를 흉내 내기도 한다

그리고 늦여름 끝물 포도를 한 양푼 건네며 머위 먹은 값을 갚기도 한다

 

사람의 생은 우여곡절, 구비구비, 구절양장, 구구절절  다 거쳐야 종착역에 이른다는데

이즘 세월은 그렇지도 않다.

 

붉은 열매도 삼백개 그리자니 손가락이 후덜거리는데 목숨을 그만큼 거두자면...

 

답답하고 분노만 갈수록 더 치밀어 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