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고 나면 생각 나는 것들 -참깨 농사
봄에, 친정 아버지 봄졑 아래 둘이서 참깨를 갈았다
아홉골 망을 다듬어서 길다랗게 골 따라 홈을 파고는 손가락으로 한 꼬집씩 넣은 참깨씨는
몇 몇 군데 제대로 안 난 곳도 있지만 순조롭게 잘 싹을 틔워
짬짬히 복토를 하고 깻순을 솎아 줘서 잘 자랐다.
장마도 그럭저럭 마른 장마로 지나가고
참깨는 별 탈없이 잘 자라 종 모양 꽃을 층층 올라가며 하얗게 매달더니
아침 이슬에도 고개를 떨구고 씨방을 맺었다.
아침 절에 밭에 가면 참깨 꽃이 하얗게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이제나저제나 참깨 꼬투리가 영글면 쪄서 털기만 하면 다되는데
늦게 비가 시작되어 참깨가 푹썩푹썩 주저 앉는다.
마음이 다급해진 고스방과 내가 낫을 들고 참깨를 쪄서 마당에 부려 놓고 나니 세 무더기나 된다
다음 날 아침에 대구 친정에 전화 했더니 아버지 엄마가 아침 숟가락 놓자 마자 기차를 타고 황간으로 오셨다
아이들과 같이 하루 종일 참깨 잎을 따서 묶어 옥상으로 올렸다.
고스방은 전날 접촉사고가 나서 인상이 찌그러졌다.
찌그러진 차를 가지고 일하러 나가자니 너무 챙피해서 일도 나가지 않고 깻단을 묶었다.
잎 떼고 깻단 묶는 일은 실제로 하면 참 고된 일이다.
어머님 살아 계시던 마지막 초가을
그 때도 심은 참깨를 쪄서 마당에 부려 놓았다.
마당에 부려 놓은 깻대를 아버님, 어머님이 다듬으시고
나는 깻단을 묶어 세워 놓는데 이틀을 꼬박 그 일에 매달려서 서로가 피곤한 상태였다.
깻단에서 떨어진 깨를 어머님이 체에 담아 놓았는데 내가 그걸 털어 놓은 깨 다라이에 같이 부어놓았다
어머님은 그걸 거기다 부었다고 노발대발. 나는 그게 그렇게 화낼 일이라고는 생각도 안 했다.
그러더니 날 보고 그렇게 시건머리가 없어 아곽바리에 밥이 쳐들어가나? 하면서 말씀하시기에
조용히 입은 채로 가출했었다 ㅋㅋ
아이고 지금이야 웃고 이야기하지만 그 때는 정말로 심각했다.
지나고 나면 추억이고, 깻단 짊어지고 이리저리 발 벌려 세워 놓으며 어무이 생각 많이 했지
이렇게 옥상에다 곶감 타래 진작 지어 놨으면
비 맞는 깻단 덮느라고 비닐 가지고 난리 치는 일도 없었을거구
그럼 엄니 마음이 부드러워서 나한테 아곽바리라는 욕도 안 하셨을거구..
이래저래 세월은 엄니 돌아 가신지 삼년이 넘어섰고
지금 내가 농사 지어 말리고 건사하고 하는 것들이 엄니 계실 때 했음 참말로 좋아하셨을 일인데
그 때는 그게 죽어라 하기 싫더니만..쩝
깻단 다 올려 세워 놓고 친정 엄니랑 아부지랑 평상에 누워 옛날 이야기하며 웃네
나는 거기다 소주 두 잔까지 걸쳤으니
그 편하고 나른하고 불콰한 기분을 말해 무엇하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