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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이 달아나다

황금횃대 2015. 2. 2. 01:15

 

 

그 좋아하는 드라마 한 편을 채 못다 보고 고스방은 잠이 들었다.

 

초저녁엔 동네 수미 할머니 돌아가신 상가집에 다녀 오다

상가집 상주 안내 프린트엔 두개의 다른 성 가진 사람들이 상주로 이름을 올렸다. 정말정말 가난했던 시절, 자식 굶기지 않으려 할머니는 뼘가웃 떨어진 옆집으로 개가를 했다.

두 집 아들네를 오가면서 할머니는 사시다가 돌아가셨다

성예 형님은 이제 할마이가 주는 마지막 술이라며 소주를 세 잔이나 마셨는데도 우째 취하지도 않냐며 돼지고기 편육을 새우젓에 찍어 안주로 먹었다. 저녁이 깊어가고 밤이 이윽고 당도하였는데도 상가집은 썰렁하다. 이렇게 또 황간면에 인구 한 명이 줄어 들었다.

 

일월이 다가고 이월이 시작 되었다

일기가 며칠 밀렸는데 애써 기억을 되짚어 기록을 하지 않았다. 그날이 그날이라 딱히 이야기를 엮을 빌미도 없지만 그래도 하루 기록은 훗날 내 역사인데..하는 아쉬움도 있는 것이다

백지로 남겨둔 칸칸에 내 생일도 들어 있고, 결혼 기념일도 소리 없이 지나 갔다.

 

얼마 전 인터넷에 단문을 읽는데 누가 자기 생일에 마누라가 외제 승용차를 선물해 주더라는걸 읽은 적이 있다. 생일 날 아침 당사자에게 자동차 열쇠를 건네주며 "여보, 이거 당신 생일 선물이야"하며 평상 톤으로 무심히, 시크하게 건네는 일은 상상만해도 기분이 좋은 일이다. 상상만 해도 기분 좋은 일을 내가 직접해보면 얼마나 좋을까 싶어 초딩 동기에게 전화를 했다

"어이, 석기 친구야 느그 회사에서 파는 그랜져 택시는 얼마쯤하노?" 친구는 이천 사백에서 이천 팔백만원쯤 있으면 살 수 있단다. "그으래에?"

 

고서방은 내 생일에 돼지고기 목살 두 근을 사고, 맘에 드는 케익을 사라고 이만원을 흔쾌히 건네 주었다. 대목 전에는 일거리가 줄어 들어 벌이가 시원찮은데도 마누라 생일을 챙겨줬다. 고맙지..이 나이에 생일이 뭐 대수인가. 내 손으로 명태살 찢어 넣고 농사 지은 들깨가루 듬뿍 넣은 구수한 미역국 한 그릇 먹었으면 되었지. 자, 이리 받았으니 나도 고서방 생일에 선물을 하나 해야겠는데...

 

음력 이월 열 사흗날, 동안 식구들 먹여 살리느라 일요일도 없이 일한 고스방에게 나는 그랜져 차키를 툭 건네며 "어이쿠 여보, 길 가다 키를 하나 주웠는데 차가 한 대 따라왔네" 하면 과연 믿어 줄까? 이거이 고삐 주워 왔더니 소 한 마리가 매달려왔다는 얘기 하고는 좀 번지수가 틀리는 거 같은데 ..

 

그나저나 내가 과연 비상금을 톡 털어 생각만해도 기분 좋은 저 이벤트를 실행을 할까? ㅋㅋㅋ

 

내 생일, 꼬박 꾸구리고 앉아 종일 바느질해서 조각 파우치 하나 완성해서 내게 선물했네. 내 손이 내딸이라구 뭐니뭐니해도 내 선물이 젤 마음에 들구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