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짇고리
시집 올때 친정 엄마는 약간 던더리여서 딸이 시집 간다니까 이불 한 채를 손수 꾸며서 만들어 주시고는 나머지는 모두 공장 제품이였습니다.
울엄마도 물론 츠자적에는 흰옥양목에 십자수 이불가리개를 수 놓아 가져 오신 분이셨지만 가난한 삶을 사느라 이도저도 다 놓아 버리고 식구들 먹고 사는 일에만 몰두 하셨죠 대신, 합천군 쌍책면 사양리에 사시던 친정고모가(울아버지누나) 내 혼수의 세세한 부분을 챙겼습니다.
고모는 촌에서도 일제 강점기때 주산을 배워서 셈법도 탁월하시고 농사 지으면서도 밤이면 골자리를 짜서 대구 서문시장에 납품을 했지요. 농사 지어 현금 만지기가 예전엔 정말 어려웠지요. 동네 사람들 만들어 놓은것도 납품하면서 시장 상인들하고도 단골 거래를 했습니다.
그렇게 현명하고 지혜롭던 고모는 위암으로 육십이 조금 넘어서 돌아가셨세요.
그 고모가 시집갈 때 장만해 주신 반짇고리는 왕골 타원형 반짇고리였습니다. 거기에 바늘, 실, 가위를 잘 정리해서 넣어 주셨지요
결혼 한지 이제 이태만 더 지나면 삼십년이 됩니다
나는 왕골 반짇고리가 올이 풀려 헤질때까지 열심히 끼고 살았는데 아쉽게도 정리가 되고 말았어요.
그걸 버리기 전에 꼬매서 쓸 생각을 왜 못 했는지 지금에사 머리를 쥐어 박고 싶습니다. 그러나 고모의 마음이 스며있던 왕골 반짇고리는 세상에서 사라졌습니다.
며칠 전 동네 차가 들어 왔는데 시골에서 필요한 체, 얼기미, 키, 그라고 대나무 채반, 싸리나무 채반 대바구니를 싣고 다니며 파는 봉고차였습니다.
모두모두 외국산입니다. 대바구니도 옛날 우리것처럼 대를 잘게 쪼개서 매시랍게 만든게 아니고 시퍼른 색감이 그대로 남아 있는 한 눈에 보기에도 성근 모양입니다. 그래도 아쉽고 궁하니 거친 싸릿대로 만든 작은 채반을 하나 사고 차 안을 들여다보니 짚으로 만든 바구니가 몇가지 규격으로 졸래리 앉았습니다
거기서 문득 돌아가신 친정 고모가 울컥 생각이 나지 몹니까. 북한산이라꼬 묻기도 전에 생산지를 이실직고하던 주인아저씨도 고맙고...그래서 짚바구니를 하나 샀습니다. 크기를 놓고 땀작거리는 내가 가격 때문에 그런 줄 알고 이천원을 선수쳐서 깎아주십니다. 그만큼 장사가 안 된다는 이야기지요
집에 와서 안쪽을 천으로 둘러쌀까 하다가 그냥 내비두었습니다. 저걸 짚으로 엮자면 하루 왼종일 걸릴 터인데 값은 그에 못미칩니다. 그래도 먹고 살려면 만들어야겠지요?
왕골 반짇고리가 없어진 후 내 규방 도구들은 봉게봉게 신세를 면치 못하고 딩굴다가 짚 바구니가 들어옴으로 다시 결성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친정고모가 사 주신 누비 베개
고모가 해준 누비 베개잎은 이미 다 낡아서 못 쓰게 되었고, 누비천을 끊어다 바이어스를 둘러 새로 만들었습니다.
이십팔년 동안 고스방과 내 왕대가리 밑에서 열일하는 베개의 베개잎을 새로 시칩니다
박는다, 꿰맨다, 시친다, 상침한다,감친다...바느질 용어도 참 많습니다.
베개잎을 다 시치고 두개의 베개를 쌓아놓고 들여다 보니, 돌아 가신 고모가 생시처럼 내 앞에 앉아 조근조근한 목소리로 얘길 건네시는 것 같습니다.
다정한 눈빛도 따라 옵니다
나는 고만 눈 앞이 흐려져 고모의 물음에 대답도 못하고 목이 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