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깨를 쪄다 놓고
컴퓨터가 없어서 블로그에 글쓰기를 통 못했네
있다한들, 핸드폰으로 작게 들여다 보는 세상이니 모니터 앞에서 양손으로 자판을 두드리는 일이 생소하기도 하다
매번 코박고 사는 그 세계도 가끔은 목소리로 연결이 되고, 또 어느땐 그들의 손길이 매만져진 물건이 오기도 한다. 이제 가상의 세계와 현실의 세계는 경계가 분명 없어졌다.
농사일은 그닥 애틋하게 맘 주지 않아서 그런지 하늘이 주신 대로 먹지 뭐...하는 맘이 지배적이다. 예전에는 한 꼬투리라도 더 거둘려고 용을 쓰고 마음을 졸였지만 이제 그런 애틋한 정도 많이 사그라들었다. 주시면 먹고, 때가 맞으면 돈을 벌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내 복이 그까지고..바야흐로 체념의 시절을 지나가고 있는게다. 이것은 좋고 나쁘고의 문제도 아니고 옳고 그르고의 문제도 아니다. 여태까지의 삶이 자의든 타의든 저 판단의 잣대를 들이대고 늘 나를 몰아갔다. 그러나 이제는 아니다.
그 동안 뭔일이 있었당가? 하고 물으면 뭔일은 없었다고 대답하지. 나는 뭔 일이 없었는데 주변의 다른 이에게는 엄청난 일이 일어 났다. 그러나 그것도 한 블록 건너의 일이라 직접적이지는 않다. 그러나 생각만 하면 내 입에서는 한숨 한 바가지가 저절로 쏟아진다.
병조는 이제 졸업반이 되어 한 학기만 남기고 있다. 등록금은 여기저기서 끌어 모은 장학금으로 해결을 하여 고서방의 주름살을 살짝 옅어지게 했고, 빨대 고병조는 그것을 빌미 삼아 노트북을 새로 바꾸기로 즈그 아부지와 타협을 봤다. 나는 당연히 발빠른 추임새를 넣고 자식의 겨드랑이를 살짝 들어줬다. 순진한 고서방은 쉽게 넘어 갔다.
상민이는 이제 삼년차 직장 생활을 견뎌내고 있다. 한 번씩 거래처와의 불협화음으로 전화를 걸어 맥빠지는 소릴 해 대지만 월급이 나오고 상여금을 받는 것으로 그 모든 어려움은 상쇄가 되는 듯하다. 그러면서 차근차근 자기의 세계를 구축해 나가겠지. 이제 스물 여덟, 슬슬 나이가 주는 압박감을 느끼기도 하겠다. 그러나 어찌 되었든 그들은 청춘이다.
고서방은 올해 육십이 되었다. 진작에 희끗해진 머리칼은 별로 타격을 주지 않으나 내년이 회갑이라는 단어는 적잖히 힘 빠지나 부다. 내가 환갑이라니! 내가 환갑이라니~~~!하며 한번씩 징징 짠다. 그게 그렇게 싫으면 나이를 생각하지 않으면 되는데 지난 번 형님 식구들이 왔을 때 자기는 회갑상을 꼭 받겠다고 앙다짐을 하는 것이다. 요새 누가 회갑상을 차려요 그냥 여행이나 갔다 오믄 그만이지...하고 내가 살짝 비틀었지만 그래도 그게 아니라구 회갑상을 차려달라는 것이다. 그러마라고 약속을 했다. 대답을 듣고 서야 회갑상 타령을 멈추었다.
팔월도 중반을 넘어섰다. 이즈음 우리 동네는 포도 작황과 비 소식에 민감하다. 포도가 다 익었을 때 내리는 비는 치명적이다. 제발 포도 다 딸 때까지 비가 오지 않았으면...하는 바람을 얹어 보지만 그것도 맘대로 못하는 일이다.
참깨를 쪄다 놓고 비가 이틀 내리 내렸다. 조금씩 내리는 것도 아니고 폭풍우처럼 밤새도록 몰아 쳤다. 쪄다놓은 참깨 무더기에 비가 들이쳐서 이미 벌어 떨어진 하얀 참깨들이 빗물이 쓸려 내려갔다. 누구한테 욕도 못하고 부글부글 끓는 마음을 다독이며 깻다발을 묶었다. 스물 일곱 아들놈은 뒤에서 도와 주기만 할 뿐 깻단 묶는 일에 달라들지 않는다. 끈으로 묶단을 만든들 허술룩하게 묶여 세워 놓기도 힘들 것이다. 아예 시키지를 않고 깻대 고르는 일만 시킨다. 언제 지 밥벌이를 할 지 모르겠지마 어설퍼서 걱정이단 생각이 저절로 든다.
일은 그렇게 해도 밥은 매번 뭐 맛있는거 먹노? 하고 물어 보고 과일은 뭐가 있어?하고 물어 보고 만두가 있나? 고기가 있나? 끊임없이 먹는 것을 문의한다. 뒤통수를 한 방 때리고 싶다. 그래도 어설피 거들어도 안 거드는 것보다 나아서.......
오후가 되어서야 구름이 조금씩 물러나고 푸른 하늘이 보이기 시작한다. 어제 비를 철철 맞으며 씻어 놓은 큰 포장을 걷어 접었다.
팔월 말쯤이면 저 포장을 포도밭에 치고 포도를 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