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빛농원
배를 한 상자 받아서 현관 대리석 난간 위에 올려 놓고
흙 묻은 장화 뒤축을. 탁,탁 소리나게 땅바닥 두드리며 아시 흙을 털어내서 벗어 놓고 대번에 배 상자를 헐어 하나 깎아 먹어요.
이렇게 알라 머리만하게 배농사 지을려면 봄부터 얼마나 종종걸음이였을까 베어 무는 배맛은 뒷전이고, 세상의 모든 농사꾼이 겪어내는 사연에 울컥 목이 메입니다. 그래봤자 내 연민이겠지만
포도밭 전지가 시작 되었지요 며칠 전부터.
보름 지나면 보름밥 목구멍에 넘어 가기도 전에 뒷고샅에서는 경운기 움직이는 소리가 탈탈 나기 시작하고 게으른 나같은 농사꾼은 밥을 목구멍에 밀어 넣으며 뒤곁 소리 나는 쪽으로 눈을 흘깁니다.
" 밥 한 술 편히 못먹게 영감님들이 설쳐댓는구먼" 궁시렁궁시렁 밥상을 물리면 괜히 방바닥에서 가시가 돋아나는양 사람을 바깥으로 내몰아요.
고양이 쫄리가 저온창고 앞 볕드는 난간에 앉아 따뜻함을 즐기고 있어요. 빗자루로 박스쪼가리를 밀치고 딩구는 낙엡도 쓸고 쫄리 등도 쓸어 주며 봄볕 맞이를 합니다. 그렇게 밍그적거리다가 종내엔 모자 디집어 쓰고 장갑 찾아서 밭으로 가는게지요. 바야흐로 일철이 시작되었습니다. 요란한 출정식이 아니라 슬그머니 봄볕이 궁뎅이를, 두다리를 밭으로 내몰아요.
고서방이 틈틈히 도와줘서 작년보단 좀 수월하게 천평 포도 전지를 끝냈어요. 골골이 무더기로 쌓여있는 가지를 묶어내 일도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까잇꺼 이제 제법 무르팍으로 나뭇단을 밀며 묶어내는 내공도 생겼어요.
갱년기 증상 인가 자주 자정을 넘깁니다. 잠 안 오는 밤이면. 옛날에는 척척, 편지를 잘 썼더랬는데 지난 겨울 아들 놈이 아프다고 해서 그놈 뒷바라지 하느라 신간이 고단해. 볼펜잡는 일이 거의 없었어요. 두서없는 편지글이지만 일하고 해그름에 집으로 돌아와 우편함에 꽂힌 <수신인분명>한 편지를 읽으면 갠히 마음이 따뜻할거 같아 오지랍 넓게 한장 보냅니다.
봄볕에 얼굴 잘 보존 하시구요~
2018. 3. 7. 전상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