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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빨 깨물어"

황금횃대 2020. 7. 3. 13:57
나는 대구 범어동 동도초등학교를 다녔다.
그땐 국민학교였지, 오학년 들어갔을때 산수 과정에 집합과 방정식 과정이 새로 들어오게 되어서 산수책 말고 집합과 방정식에 대한 별도의 교과서를 받았다.
거의 책 한 권 분량이었으니 숙제의 양도 많았다.

오학년 담임 최병철. 선생이라는 호칭을 붙여주기도 싫은 인간이다. 숙제가 많으니 아이들 숙제 검사를 하면 더러 못해온 경우도 많았다. 그럴 때마다 그 인간은 아이들을 앞에 불러 내놓고 "이빨 깨물어!"라고 날카롭게 소리 치고 아이들 뺨을 후려 갈겼다. 나도 한 번 숙제를 못해서 그 체벌을 당한 적이 있었다. 송곳니에 산쁘라 보철을 하고 뽀마드 기름을 발라 번들거리는 머리통을 들이대며 오학년 여자아이의 공포 앞에 예의 저 "이빨 깨물어!"소리가 들리고 뒤이어 살갗을 부어 오르게 하는 찰진 소리가 듣겼다.

산수에 대한 트라우마는 그 때 생겼다
난 집합과 방정식 문제만 풀면 가슴이 두근거리고 머리 속에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근 일 년을 그것 때문에 씨름을 하면서도 그 날의 상처를 걷어 내지 못했다

수 십년의 세월이 흘렀고 그 인간은 벌써 저세상의 경계를 넘어 갔을것이다. 난 지금도 그 날 내가 앞으로 나가서 공포로 다른 아이들을 때리며 건너 오던 그의 손과 얼굴, 커다란 창밖의 학교 담장과 누렇게 색바랜 옥양목 커튼이 흔들리던 풍경을 당장이라도 떠올릴 수가 있다. 그런데 그 아프고 치욕스럽고 공포스럽던 그 말, <이빨 깨물어!> 소릴 21세기에 또 본다.

23살 바이에슬론 선수가 팀닥터와 감독에게 일상속에 밥 먹는 일보다 어쩌면 더 흔하게 당했을 폭행 중에 듣던 소리.
나는 가슴이 찢어지는 듯하다. 그 불쌍한 한 여자아이가 공포에 질려 반항 한번 못하고 고스란히 그 시간들을 견뎌 냈다는게 너무도 화가 나고 온몸 이 부르르 떨린다. 억울하고 미칠 것같은 고통이 고스란히 내 심정을 찌르고 저민다

죽음으로 밖에, 자신이 비참하게 당한 자존감 제로의 삶을 이야기 할 수 밖에 없는 이 빌어먹을 세상이 오늘은 눈꼽만큼도 아름답지 않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