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름 선수
내가 사는 황간면은 면민체육대회를 2년에 한번씩 하는데 이번에도 동네 아줌마 씨름선수로 또 선정이 되었다. 이 조고만 동네에 한번 선수는
영원한 선수가 되어 제 육신의 쇠락에는 상관없이 샅바에 허리와 다리를 걸어야 한다
그렇게 몇년 하다보니, 나름대로 팬이 생겨 내
친구 아들놈과 딸은 아침을 서둘러 먹더니 아줌마 씨름 하는거 보러 가야한다고 길을 제촉하더라고 운동장에서 만난 친구가 웃으며 이야기를 해준다
그니의 남편이 아이들에게 "그 아줌마가 진짜로 씨름을 잘하니?" 하고 물었을때 아이들은 조금도 의심의 감정을 섞지 않고 제비새끼
입을 벌리듯 일제히 "녜!"하고 대답을 하더란 말까지 전해준다
젊은 사람이 점점 사라지는 농촌마을에 씨름을 할 수 있는 젊은
여편네는 더군다나 귀한지라, 이젠 젊다고 할 수 없는 내가 계속해서 총대를 매고 앞으로 앞으로 전진중이다
사람이 직책을 맡으면
거기에 상응하는 능력도 생긴다 하였는가?
내가 비록 동네 씨름선수지만, 선수로 발탁이 되었으니 그냥 막무가내로 나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마침 어제 한라장사 결승전을 하길레 참 눈여겨 보았다. 바짝 들린 선수가 어떻게 되넘겨치기를 하는지 아주 눈에 박을 듯 리플레이 되는 화면을
뚫어지게 쳐다 본 것이다
그렇게 나름대로 영상자료나마 기술을 연마하고, 외식으로 삼겹살을 먹어 여차하믄 삼겹살 힘으로라도 밀어
부칠 요량으로 철저히 준비를 하였다
날이 밝아, 새벽같이 동네 청년회의 소집이 되었고 나는 당당히 씨름선수로 명단제출이 되었다
혹여 너무 힘주다가 바지 뒷통수가 터지는 불상사가 있을까바 널너리한 체육복까지 챙겨서 입고, 신발을 신지 않고 하면 양말 바닥이 새까맣게
된다고 양말 한켤레까지 챙기고, 땀을 잘 흡수하는 부드러운 타월까지 가방에 챙겨넣었다
기껏 싸워봐야 너댓판이면 결승전까지 무난히
갈 것인데, 손에 쥐어진 가방의 부피는 뭔 전지훈련 떠나는 선수의 가방이다
씨름선수라는 막대한 사명을 받은 나는 아줌마들이 동네
어른들과 손님 들을 접대하기 위해 부침개며 돼지고기 볶음이며.. 말복 더위에 땀 쩔쩔 흘리며 불 옆에서 수고하는데도, 그 모든 부역이
면제되었음은 물론이거니와 왕년에 한가닥 씨름 선수로 이름을 짜하게 날린 옛 전설의 선배 아자씨들로부터 알아 들을 수도 없는 기술을 삽시간에 전수
받느라 머리가 팽팽 돌지경이였다
드디어 씨름판이 시작되고, 면민의 타고 그을린 검고 순박한 얼굴들이 모래판 주위에 뺑돌아쳐졌다.
한 판, 한 판 치뤄지는 끝에는 사심없는 웃음과 환호, 애석한 한 숨들이 뒤섞여 모래판은 그야말로 뜨거웠다
멀리서 씨름판의 환호는
흐린 하늘에 제재소의 톱밥처럼 휘날리고, 늘 한적하던 시골 중학교의 운동장 귀퉁이는 넘쳐나는 휘장과 뽀얀 천막, 그리고 국밥을 끓이는 분주함으로
구석구석이 시끄럽다
아...내가 저 씨름판에서 옛 영화를 다시 맛 볼수 있을까...가슴은 사뭇 뛰다 못해 저 혼자 발동기를
돌린다 (참고로 2년마다 열리는 체육대회에서 제작년 씨름에 우리 마을이 당당히 일등을 하였던 것이다 물론 나도 선수로 뛰어 딱 한판 지고는 다
이겼다 ㅎㅎㅎㅎ)
근데, 이 무슨 날벼락이란 말인가?
참가 하기로 약속한 남자선수 두놈이 참가 할 수 없다는 통보를
해왔다. 힘 안쓰면 그 담날 팔다리 삭신 쑤시는거야 없겠지만 왜 그리 허전하고 허탈하든지....나는 그만 전의를 상실한 패잔병 같은 몰골이다
그냥 쇠고기 내장국에 밥만 한 그릇 꾹꾹 말아 먹고 왔다
경기에 이기든 지든 그건 아무 상관이 없는데...
남편이
곱지 않는 눈길에도 불구하고 내가 씨름에 나가는 이유를 뭇 사람들이 알리야 없지마는 하여튼간에 무지 서운했다
촌에서 맨날
농투성이로, 혹은 압력밥솥고압기사직으로 열심히 생활하면서 나름대로 식구들 '살림'을 위해 고군분투한다 하나..아짐마도 가끔은 환호 속에 있고
싶은 것이다
잘하든 못하든, 내게 맡겨진 그 '특정한 일'을 신명으로 해 보고 싶은 것이다.
승부에는
상관없이.
그런데 그 작은 꿈을 다른 놈(죄송)이 포기하는 바람에 못하게 되었으니
얼마나 기운이 쑥
빠지던지.
그러나 2년 뒤에는 다시 면민체육대회가 열릴 것이고, 나는 여전히 마흔이 넘은 나이에도 젊은새댁이란 호칭을 들으며 씨름
선수에 발탁이 될것이다..
2년 뒤를 기약하며
2001. 8.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