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대포집 세째며느리
옷 한 벌
황금횃대
2005. 3. 27. 14:55
옷 한 벌
언제 죽었는지
기억에도 가물가물한 남편이 선몽을 하였다
나, 추워
나, 추워
자두밭 한 켠에 남편을 심어놓고
어린 자식들과 아귀같이 살아 온 세월
해마다
자두밭에 네 발로 기어기어
자두를 따고, 내다 팔고 하여도
눈에 뵈는 것이 먼저 급하고
내 목구멍에 한 술 밥이 더
갈급하여
먼저 간 당신은 이꼴저꼴 안봐서 편하겠다 생각했지
뒷뜰에 앵두가 빨갛게 익어가고
맨발로 돌아댕겨도 고무신이 미끌어지게 땀나니
이제
추운 것은 가끔씩이라도 찾어오겠나 했는데
꿈에 선몽을 하다니..
추워, 추워...
땟장이 다 벗겨졌구료
방금 구은 막사기 붉은 빛으로
당신은 가슴을 드러내고
옷 없는 설음을 우는구료
조금만 참으시오
조금만 참으시오
큰아들, 작은 아들 하천공사 보상받은
몇푼 안되는 돈을 넘보지만
내 이걸로 당신
옷부터 먼저 해드리리다
살아생전 모진 고생만 주었으나
그것은 다 지난 일
땡볕 가려주고
겨울바람 막아 줄
뗏장 옷을 입혀주리다
당신 좋아하는 술 한 잔
쳐서
새 옷 입은 기쁨도 나눕시다
나도 잊을테니 당신도 잊으시오
그 때는 시절이 헐벗고 굶주렸을 때니
마음 속에
원한일랑 깨끗이 씻고
다음 내 꿈에 나타나서는
새 옷 입어 참 따뜻하고 고마우이
이 한마디만 내게 살갑게 건네주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