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대포집 세째며느리

감자떡과 그 총각

황금횃대 2005. 4. 20. 09:07

감자떡

 



권정생

 



점순네 할아버지도
감자떡 먹고 늙으시고
점순네 할머니도
감자떡 먹고 늙으시고


대추나무꽃이 피는
외딴집에
점득이도 점선이도
감자떡 먹고 자라고


멍석 깔고 둘러앉아
모락모락 김나는
감자떡 한 양푼
앞마당 가득히 구수한 냄새


점순네 아버지도
감자처럼 마음 착하고
점순네 어머니도
감자처럼 마음 순하고


아이들 모두가
감자처럼 둥글둥글
예뻐요

 

 

 

 

어딘가에도 썼을거라 삼천포가는길, 진주에서 만난 옛 애인 이야기.

가끔 단편 속에 수박색잠바를 입고 다녔다던 함창총각 이야기가 심심찮게 나오는데, 그 함창총각이 나를 열렬히 좋아할 때 건네 준 시 한 편, 감자떡.

 

사람이 살면서 전환기를 맞이 할 때가 있는데, 나도 몇번 그런 경우를 겪은 것 같다.

그 때는 이것이 나를 바꾸어 놓은 어떤 계기점이 되겠구나 하는 느낌이 없었는데 이맘쯤 살고 보니 아하, 맞어..그 때 내가 조금 생각이 바뀌었었지..맞어, 맞어 하고 고개를 주억거린다.

 

함창총각은 내가 잠깐 회사를 그만 두고 쉬고 있다가 학교 선생님이 연락을 해주셔서 잠깐 취업을 한 곳이였다. ㅇㅇ토목학원. 동대구역에서 파티마병원쪽으로 내려오다보면 오른쪽 큰 건물에 그 학원이 있었다. 그러니까 학원경리를 본 셈이다.

 

한 두어달 있었나? 학원비 독촉하는게 그렇게 싫어서 그만 두고 곧이어 시내에 있는 스텐레스대리점에서 일 할 때였는데 퇴근 무렵 소낙비가 엄청 쏟아졌다. 머리에 핸드백을 뒤집어 쓰고는 들어오는 버스 출입구만 보며 열라리 뛰어가는데 누가 뒤에서 아는 척을 한다. 함창총각이다.

 

"어마낫, 오랜만이네요"

 

"잘 지냈슈"

 

"예..잘 지내구 말구요. 그나저나 토목 자격증을 다 땄어요 어쨌어요?"

 

버스 천장에 매달린 동그란 손잡이를 팔을 뻗어 둘이서 각자 하나씩 잡고 그 동안 있었던 일을 이야기 한다. 어디에 내리느냐고 물으니 신암동에서 내린단다. 나는 좀더 가서 엠비시방송국에서 내려요. 그런데 총각은 내릴 때가 됐는데도 안 내리고 버티고 섰다. 왜 안내리느냐고 물으니 전양이 우산이 없는거 같아 집까지 바래다 주려구요. 이쯤에서 감동을 묵어줘야하는데 별로 그런 것은 없고 할일이 없어서 그러는구나. 어쨌던 고맙구만요..집까지 우산을 받쳐주고는 되돌아갔다.

그것이 발화점이 되어서 몇 년을 그 총각하고 만나고 차마시고 밥먹고 했나보다.

 

함창총각 이아무개는 집이 함창이였고 사는 곳은 대구에서 동생들과 자취를 하고 있었다.

나보다 두 살 많은 언니가 있었고 나보다 한 살 적은 남동생, 이렇게 셋이서 살았다.

일요일 경대 정문 앞 그 자취방에 가면 언니랑 동생이란 호빵을 쪄먹네 바둑을 두네..나는 아무 느낌없이 그 집을 드나들었다. 나하고 다섯살 차이였으니 그 땐 결혼이니 뭐 이런거 벨로 생각도 안 했다.

 

그러다 총각은 진주로 직장을 구해서 가고 나는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되었는데 그 때 마침 곤고한 내 영혼에 종교가 찾아왔다. 종교 이야기는 나중에 하고.

한 동안은 진주로 자주 놀러를 가고 하다가 다른 일이 생기니 자연 멀어졌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 멀어진다는 건 진짜 맞는 말이다.

 

나는 새로 등장한 종교라는 애인에게 온통 마음이 빼앗겨 안타까운 눈으로 나를 바라보던 함창총각의 눈길은 안중에도 없었으니 그가 마음이 아플거라는 생각을 조금도 하지 못햇다. 철이 없었으니 쯧쯧...

 

그가 진주가 가 있는 동안 편지를 많이 했다. 편지를 하면 눈이 시원해지는 큼직한 글씨체로 여러가지 일들을 적어보내주고, 씨알의 소리와 함석헌, 지학순 주교, 그리고 이오덕선생님, 권정생선생님의 시와 글들을 추려서 보내주었다. 특히 그 때 읽은 이오덕 선생님의 글쓰기지침은 평생 내가 끼적거리는 글줄의 푯대가 되었다. <진실하게 쓰라! 진실이 없는 이쁨은 좆도 아니다> 물론 이렇게 말씀을 하신건 아니시지만, 결국 뒤집어보면 그 말이다.

 

편지 오갈 때 첫번째 답장에 이 시가 적혀 있었다. 감자떡.

 

그러고보면 그의 성격은 여간 깐깐한게 아니였는데, 한번은 잠옷을 사러간다고 시내를 뺑뺑 돌았는데 얼마나 바느질이며 색상이며 천의 상태, 값 이런것들을 꼼꼼히 따지던지 대충 설렁설렁 한 나는 고만 맥이 탁 풀렸다. 내눈에는 좋아보이고만 뒤적거리다 꼭 흠을 잡아내는 것이였다. 그 때 나는 조금 질렸지 싶다.

그러고는 어느 날, 내게 대학노트 한권을 주는데 심심하면 읽어보고 마음을 닦아라...하기에 뭔가 열어봤더니 여자, 그러니까 주부가 되었을 때 함양하면 좋다는 기본 수칙 같은 것을 100가지 꼼꼼하게 적어서 내게 준 것이다. 아이고 마....나는 입을 다물었다.

 

만나면 참새처럼 종알거리던 여자가 입을 다물었을 때 그는 그걸 느꼈는지 어쨌는지 모르겠다.

미주알 고주알 기억하기도 힘들고 기억해서 얘기해봤자 거기서 거기고. 요는,

 

그 때부터 읽기 시작한 씨알의 소리와 장준하, 뜻으로본 한국 역사...이런 것들이 나를 많이 바꿔 놓은 것이다. 이오덕 선생님의 책들도 그러하고. 연애는 실패로 끝났지만, 함창총각으로 말미암아 나는 생각의 틀이 많이 바뀐것이다.

 

아직도 나는 그가 준 감자떡 시를 고이 써서 간직하고 있다

마음이 심란할 때도 그 시를 꺼내 읽는다. 둥글둥글 이쁜 아지매가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둥글둥글 감자떡같은 사람이 되기 위해, 그리고 내 자슥놈들도 둥글둥글 순하게 자라주었으면, 고스방도 둥글둥글...둘러 앉아 얼굴만 봐도 저절로 힘이 솟고 마음이 풀어지는 감자떡 같은 식구들이 되었으면 ..하고.

 

수박색잠바 함창총각 이아무개는 지금 얼굴도 가물가물하지만, 그가 내게 준 시 감자떡은 평생 내 곁에서 둥글둥글 둥근 웃음을 만들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