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
자두밭 꽃들이 어디만큼 오시었나
부개동 자두밭 가는 발걸음이 가볍다 못해 구름 양탄자를 탄 듯 저절로 떠 오른다
경부선 철둑 비얄에는 제비꽃이 지천으로 피었다.
이정록 시인은 저것을 제비꽃 여인숙이라 하였지
밤나무 아래 시금치가 거름기를 받아 이제서야 속잎이 나풀나풀하다
작은 나물칼로 밑둥치를 오려낸다
바글바글 놓아둬서는 될일이 아니고 먼저 크는 놈부터 솎아내야한다
시금치 이파리 귀부분이라 짐작되는 곳을 살짝 잡고는 나물칼을 예리하게 넣어서 70도 예각으로
뿌리를 도려주면 귀를 잡힌 시금치 하나가 허공을 작은 흙부스러기를 움켜쥐고 위로 올라온다
산벚꽃 날리는 이파리가 물 고인 웅덩이에 가장자리로 둘러 앉아 술렁인다
꽃 떨어지자 잎 돋아난 그자리가 무성해지면 뻐꾹, 뻐꾹새가 무시로 날아 들겠지
시금치 한 소쿠리 오려서 나풀나풀 담아놓고 아랫밭 미나리꽝으로 간다
뼘가웃씩 자란 미나리가 불어오는 바람에 이마를 슥슥 비비고 있다.
겨울날 따스한 볕을 님 계신데 비취고자
봄 미나리 살찐 맛을 님에게 드리고자
님이야 무엇이 없으리마는 내 못잊어 하노라
(작자미상)
티검불 걷어내며 하나씩 뜯어 왼손에 모아 쥐는 손이 봄볕에 붉어간다
미나리 뜯는 동안에는 살찐 이 맛을
님에게 드리고자 하여도 그리 못한 옛여인을 생각하며
입 안에서 시조를 가만가만 읊어보는 맛.
비닐봉다리에 눌러 담아도 삶아 놓으면 기껏 한지기 아니면 두어 지기 될려나
햇볕에 눈이 부셔 눙깔에는 눈물이 슬금슬금 비어져 나오는데
그 두어지기 이걸 누구랑 나눠먹을까. 이 살찐 맛을 어느 님에게 드려야할까
눈물겨운 눈 앞에 고물고물 나타나는 사람들.
그러니까 그 사람들이 모두 내 님이란 말이지.
님이 많아 행복한 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