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이란게..
글자로 쓰니 글이라 하지 기실 내가 이렇게 쓰는 건 글이라고 하기 어렵고
그냥 <주끼댄다>라는 표현이 맞겠다
저녁답부터 실실 비가 시작 되었는데 양철 지붕 아랫채는 빗방울에 젤 민감한
반응을 한다. 비 온다고 반다시 그런건 아닌데 어떤 날은 나도 기분이 거시기 해서
빗방울 하나에 한 마디씩의 이야기가 떨어지는 날도 있다.
그렇게 하나씩의 단어를 붙잡다 보면 이야기는 천만갈래로 찢어서 가심패기에 뿌리를
박고 빗방울 한 모금에 뿌리는 이야기 싹을 내고, 이야기 꽃을 피운다
그런거 저런거 부지런히 두드리면 아주 깜박 잊어 먹었던 한 때의 기억들이 무장무장
꽃을 피우는데, 그걸 귀히 여겨야 할텐데 이즘 들어 자꾸 귀찮아진다.
이야기란 것도, 물 들인 옷감 헹구듯이 살살 흔들어 울궈 먹는 것은 그 나름대로 이야기가
울궈내지는 빛깔이 있고, 또 토하듯이 이야기를 쓰면 토씨 하나라도 다시금 손보기 싫을 만큼
한 채반 내지른 이야기가 섬뜩할 때도 있다. 글이란 그런 것이다.
이런 이야기는 할려면 좀 뭣한 이야기지만 늘 가슴에 앙금처럼 가라 앉아 있는 이야기라
혼자만 알고 그냥 넘어가면 될 것을 그리 못하고 하마나 해볼까, 하마나 해볼까..하고 늘
땀작거리는 이야기가 있다.
고등학교 1학년 될 때까지 나는 단칸방에 살았다.
아버지는 여전히 그륵 장사를 하시고 내 밑으로 중1, 초4, 초1(이러면 이년, 삼년, 삼년터울이 맞나? 바로 밑에 동생은 나하고 두살 터울이지만 내가 일년 일찍 초등학교를 들어가서 학년은 삼년 차이난다) 대구시 범어동 지금 법원 앞 문화맨션 앞의 동네에 살 때 일이다.
세들어 사는 집이 가게를 할 수 있고 방 한칸 딸려 있는 그런 집이였다
그러니 살림을 살 수 있는 집이 아닌 것을 방에 불넣는 아궁이가 있는 곳을 부엌으로 만들고
텅빈 홀에는 들마루를 하나 들여놓고 저녁이면 아버지가 끌고 온 그릇이 잔뜩 실린 리어카를
보관했다.
그 때가 봄이였던가 여름이 마악 시작될 때였던가.
길다란 단칸방에 여섯식구가 나란히 나름대로의 순서로 누워 잠을 자다가 이상한 소리에 내가
선잠을 깻다. 그것은 숨죽여 속삭이는 소리인데 설핏 눈을 뜨니 아버지가 엄마 위에 올라가 있는
모습을 보고 만 것이다. 내 가슴은 그냥 쿵덕거리는 소리로 가슴이 터질지경인데 더 기막힌 것은
몸을 꼼짝도 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정신이 화악 깨어나면서 눈은 감아야하고 마른침은 연신
꼴딱꼴딱 넘어가는데 그 긴장감이란게 뭐라 말로 표현을 못할 지경이다.
가게 셔터를 내리면 대낮에라도 껌껌하여 잘 보이지 않는 방구석에 그 밤에는 어디서 훤한 기운이 뻗쳐 들어왔는지 어둠 속에서 아버지의 실루엣이 선명하게 각인이 되었다. 나는 지금도 눈을 감으면 그 선을 기억할 수 있다. 그 숨막히는 공기와 달싹 할 수 없었던 목젖이며, 고이던 침을 언제쯤 소리나지 않게 삼킬까...하는...그런 순간들.
그 다음날부터 나는 방에서 자지 않고 홀 안에 있는 들마루에 이불을 깔고 혼자 잤다.
조금 추웠지만 그것이 훨 편안한 잠을 내게 가져다 주었다
그러고 얼마 있지 않아서 방이 두 칸 있는 집으로 이사를 갔다.
사람이 평생을 지배하는 사고란 오래오래 훈련되고 학습된 것으로 형성이 되는 것도 있지만, 순간의 사건이 평생 어쩌지 못하는 행동방식으로 굳어질 때가 있다.
나는 그 때....에이..그만 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