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이 사람을 먹다
밥이 사람을 먹다
-유정의 굳김을 놓고
채만식
<나는 문필의 도술을 부리짐이 아니다. '피사'의 사탑이 확실한 과학이요 요술이 아니듯이 이것도 버젓한 ' '사실'이다.
폐결핵 3기의 골골하든 우리 유정이 죽은 것이 바로 그것이다
유정이 병을 초기에 잡두리해서 낫우지 못하고 덧히는대로 할 수 없이 내맷겨 3기까지 이르게 한 것도 가난한 탓이거니와 다시 그를 불시로 죽게 한 것은 더구나 그렇다.
폐를 앓든 사람이 좋은 음식을 먹고 좋은 약을 먹으면서 좋은 곳에 누워 몸과 마음을 다같이 쉬어야 한다는 것은 상식으로 되여있다.
우리 유정도 그랬어야 할 것이요, 또 그리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와 아주 반대로 영양이 아니되는 음식을 먹었고 약이라고는 아주 고약한 XX위산을 무시로 푹푹 먹었을 뿐이다. 성한 사람도 병이 날 일이다.
그러면서 그는 소설이라는 것을 썼다. 소설이라는 독약! 어떤 노력보다도 더 많이 몸이 지치는 소설 쓰기. 폐결핵 3기를 앓튼 사람이 소설을 쓰다니 의사가 알고 본다면 그 의사가 먼점 기색을 할 일이다.
유정도 그것이 얼마나 병에 해로운지야 잘 알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그는 소설을 쓰지 아니치 못했든 것이다.
그것은 창작욕도 아니요 자포자기도 아니었다. 그는 창작욕쯤 일어나더래도 누를 수가 있었고 자포자기는커녕 생면에 대해서 굳센 애착을 자신과 한가지로 가지고 있었다.
유정은 단지 원교료의 수입 때문에 소설을 쓰고 수필을 쓰고 했던것이다. 원고료! 4백자 한 장에 대돈 50전야라를 받는 원로료를 바라고 그는 피섞인 침을 뱃어가면서도 아니 쓰지를 못했든 것이다. 이렇게 해서 쓴 원고의 원고료를 받어가지고 그는 밥을 먹었다. 그러다가 유정은 죽었다
그러나 이것이 어데 사람이 밥을 먹은 것이냐? 버럿하게 밥이 사람을 잡아 먹은 것이지!
도향, 서해, 대섭 다 아깝고 슬픈 죽엄들이다. 그러나 유정같이 불상하고 한 사무치는 죽엄은 없었다. 유정이야 말로 문단의 원통한 희생이다.
지금 조선은 가난하다. 그래서 누구 없이 고생들을 하고 비참히 굳기는 사람이 유로 세일 수 없이 많다.
그러나 다같이 문화의 1부분을 떠맞고 있는 가운데 문단인 같이 고생하는 사람은 없다.
문단인은 '흥보'가 아니다 종족을 표현하는 것은 '나치스적으로 말고' 예술 그 중에도 문학이다. 인류 진화사상 종족이 별립되어 있는 그날까지는 한 실재요 따라서 표현이 되어야 할 것이다. 완고한 종족 지상주의자도 귀를 잠간 빌려 다음 말을 몇 구절 들어라.
폴랜드를 지탱한 자 코사크나 정치가가 아니다. 폴랜드말로 된 문학밖에 더 있느냐?
그렇겠만 작가는 가난하다 못해 피를 토하고 죽지 아니하느냐!
아무리 빈약하더래도 지금 조선의 작가들이 일조에 붓을 꺾고 문학을 버린다면 조선이 적막한 품이야 인구의 반이 줄은 것보다 더하리라는 것을 생각인들 하는 자 있는가 싶지 아니하다.
제 2의 유정은 누구며 제3의 유정은 누구뇨? 이름은 나서지 아니해도 시방 착착(?) 준비는 되어가리라.! 밥이 사람을 먹을려고>
김영기 저 <김유정 그 문학과 생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