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스방이 없다
To, 오현주
새벽에 눈을 뜨니 고서방 자리가 휑하니 비었다.
베개만 내 옆에서 썰렁하게 있다. 여태 이런 적이 없었다
어제 저녁 먹으러 들어와, 아이들에게 공부 안 한다고 조상이 시끄럽도록 한바탕 하였다.
당연히 에미가 제대로 가르치지 않는다는 덕목(?)도 싸잡아 나왔다
그렇게 우리 셋은 졸지에 먹는 것만 밝히고, 대가리 맞대고 장난만 치고 노는 식충이들이 되었다.
그래도 저렇게 날뛸 때는 한마디 거들면 더 눈에 불을 켜겠지 싶어 그냥 방으로 와서 아침에 빨아 둔 요대기 껍질만 말 없이 판판하게 펴서 집어 넣는다.
그렇게 저녁 시간은 가고 나는 그가 오기 전에 잠들었는데 늦게 들어와서는 샤워를 하고 내가 덮고 자는 홑이불을 들춰싸며 찝쩍거린다.
"왜 남으 이불은 자꾸 걷어 쌋소" 주머니 속에 송곳도 더불어 말투에 딸려 나간다.
팩 돌아 눕는다. 그 이후 나는 그대로 잠들었는데 새벽에 일어나니 그가 없다
풀벌레 소리만 원 없이 창을 타고 넘어와 방 안에 가득하다.
그런 조용한 아침에 나는 선뜻 깨어진 맑은 정신으로 편지를 쓴다. 스방은 오데로?
아이방 좁은 침대에서 아들놈하고 한 삼태기도 안 되게 오그리고 붙어 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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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 오현주 남편 강순태
새벽에 눈을 뜨니 고서방 자리가 휑하니 비었다.
나는 이제 씨잘대기 없는 꿈은 폐기 처분 시키기로 했다
그게 <이제 폐기처분이다>하면 곧바로 지하 막장에 덜컥 들어 가 주는 것은 아니다마는 그래도 그러기로 했다.
그 어줍잖은 <꿈>이라 색칠 해 놓은 것들이 은근히 사람의 기운을 빼놓는다. 그리하여 글 쓰는 일도 안하기로 했다. 이제 영 연필을 놓고 살란다.
모아 놓은 볼펜도 고무줄로 동여매 다락 우에 올려 놓아야지. 가계부만 착실히 쓰면서(이것도 십수년 써 봤지만 도움이 안된다. 곧 폐기 처분 시킬 덕목(?)이다)
닭이 울고, 황금횃대라고 포장한< 기분이나마 뻔쩍뻔쩍한> 그 포장지도 이젠 버리고....
어때? 훨 가벼워진것 같지 않니? 이놈의 뱃살만 좀 더 빼고 나면.
잘 지내라.
2002. 9.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