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tring pen
81년 상고를 졸업하고 하꼬방 경리를 이년 하다가 다시 직장을 잡은 것이 년간 매출 5억규모의 작은 중소기업 도금공장이였다.
옛날 일본에 건너가서 도금을 배워와 작게 시작한 공장은 사장님은 여벌이고 싸모님이 공장의 전권을 장악하고 큰아들이 영업상무를 맡아 그야말로 족벌의 경영체제를 고스란히 발휘하고 있었는데 그런저런 이야기는 나중에 쓰고.
거기서 나는 인생의 기막힌 친구를 하나 만나게 된다. 그것이 뭐냐하면 바로 로트링 펜.
감자떡 시를 써 준 함창총각이 토목과 줄신이라 데이트하면서 가끔 제도상점에 들러 제도 용구를 살 때 따라갔었다. <오구>라 하던가? 기억도 가물가물하네. 제도할 때 먹물을 묻혀 쓰던 가는 펜이였던거 같다. 그걸 사러 가는 길에 따라갔는데 잠옷 살 때도 그렇게 꼼꼼하던 총각이였으니 <오구>를 살 때는 얼마나 날카롭게 물건을 뜯어 보겠는가.
그걸 사서 나오며 내게 찬찬히 그 도구의 사용법을 설명해 주었다.
무엇이든 물으면 역사적 유래가 있는 것은 그 유래까지 들춰가며 자세히 설명해 주는 것이 그의 버릇이다. 만고에 내가 <오구>를 쓸 일이 없는데도 그렇게 했다.
또 이야기가 옆길로 샌다
그 공장에서 경리일을 하는데 거기는 주로 기사들이 기계 부품 설계도를 많이 그렸다.
약간 기울어진 판판한 제도판이 사무실 한켠에 자리 잡고 있어서 거기다 쇠자석테이프로 종이를 착착 붙여 놓고 장착된 자를 움직여 선을 긋거나 표를 만드는 일을 하면 참 재미있었다
지금은 컴으로 그 모든 것을 다 하지만, 그 때야말로 사람 손으로 설계도를 다 그렸으니 반투명 유산지 같은 제도용지에 까만 제도 잉크로 설계도를 그려놓으면 꼭 연미복을 깨끗하게 차려입은 새신랑처럼 날렵하고 도면이 깨끗했다. 거기다가 제도자의 실명을 제도가 끝난 종이 귀퉁이에 날짜와 품명, 제도자 이름을 챠트체 글씨로 잘 써서 완성해 놓으면 그야말로 가지고 놀고 싶도록 마음에 드는 것이다.
한번은 물품구매 청구서가 올라왔는데 거기 보니까 제도용펜이라는 명목으로 경비 청구가 되었다. 나중에 제도 기사 옆에 슬쩍 가보니까 그 펜으로 도면을 그리는데 세상에 그렇게 마음에 들게 글씨가 깨끗할 수 없었다. 펜의 굵기도 .05mm에서 .02mm짜리까지 다양했다.
그 펜을 보는 순간 나는 로트링에 사로잡힌 영혼이 되고 말았다.
독일제라 가격도 만만찮았는데 내가 처음 샀을 때가 5700원쯤 했는거 같다. 그 때 내 월급이 십오만원안팎이였던가 그랬으니 꽤 비싼 펜이였다.
거기다 잉크도 납다그리한 병에 뾰죽한 주둥이가 달린 것이였는데 8000원쯤 했다.
그것이 비싸거나 말기나 나는 사로잡힌 영혼, 로트링에 콩깎지가 씌였기 때문에 그런 것은 아랑곳 하지 않았다.
그 때부터 내 엽서 쓰기가 시작된것 같다.
A4 복사지에 그림을 그리고 색연필 12색짜리로 색칠을 해서 친구에게 편지를 보내면 진짜 기분이 좋았다.
0.02mm펜으로 그림을 그리면 선들이 얼마나 가는지 그저 신기할 따름이다.
아직도 나는 로트링펜을 세트로 마련해 두고 쓰는데 예전만큼 자주 쓰지는 않는다 왜냐?
요즘은 편지쓰는 지질이 달라졌다. 한지에 편지를 쓰니 로트링펜이 메끄럽게 건너가질 못한다
한지는 섬유질이 겹겹이 얽혀있어서 날카로운 펜끝을 수용을 못하는 것이다.
그래도 가끔은 잉크가 굳을까바 흔들어 잉크를 깨운다 내 변변찮은 감성도 같이 묶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