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를 잡으며
어제 저녁, 약을 사러 가기 위해 고서방 차를 타고 갔는데
차를 타기 전 주차 시킨 차의 본네트 위에 파리가 새까맣게 앉아 있다
소를 먹이니 파리 많은 거야 어쩔 수 없는 노릇이고
고서방이 마당 으슥한 곳에 가서 오줌 누는 사이 나는 파리를 잡았는데
손바닥으로 파리를 때리면 십중팔구, 아니 십에 십은 실패다.
그러면 어떻게 잡느냐.
파리를 보고 파리가 떠오르는
지점에 두 손바닥을 마주쳐야 파리를 잡을 수 있다
파리의 순간 이륙 속도가 얼마나 빠른지 자료는 없지만, 그야말로 눈 깜박할사이로
파리는 공중부양을 한다. 거기에 무딘 손바닥을 파리채로 활용하면 실패율이 높을 수 밖에.
그렇게 한참을 파리 부양 속도를
본능적으로 감지하여 손바닥으로 파리를 잡았는데
순식간에 열마리를 더 잡았다. 그래도 파리는 여전히 따뜻한 본네트 위에 올라 앉는다.
저 파리가 뇌가 있다면 저를 죽이고자 바짝 벼르고 있는 손바닥이 있다는 걸 알면
다시는 앉질 않을 텐데 끊임없이 파리는 내 손바닥
소리에 놀라면서도 다시 그 위에 앉는다. 왜 그럴까. 그건 본네트가 따뜻하기 때문이다.
가을철 날씨가 쌀쌀해질 때 파리는 한여름보다 더
기승을 부리는데, 양지쪽에 보면 파리가 바글바글 끓는다. 그러니까 파리는 본능적으로 따뜻한 것을 좋아하는 것이다.
그러니 제가 죽을
곳인지도 모르고 거기 가서 앉는다.
어찌 파리만 그러하랴
그 길로 가서 흥청망청하다보면 결국 죽음과 몰락의 길임을 알면서도
파리가 그러하듯 따뜻함, 즉 욕망의 유혹에 끊임없이 넘어가는 것은 파리만의 일이 아니다.
갈챌라는 생각은 없지만, 파리를 잡으며
깨닫는 두가지.
그것이 악인 줄 알면서도 덤비는 것은 욕망이 선을 앞서는 까닭이요, 파리를 잡을 때 직접 내리치는 것보다 조금
사이를 띄워서 잡는 것이 훨 성공율이 높다함은 사물과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이 어떠해야함을 깨닫게 해준다.
사람은 문제 속에 있을
때에는 그 문제의 본질을 바로 볼 수가 없다. 조금 떨어져서 문제를 바라보고, 그것이 자신이 가진 까짓껏의 힘으로 되지 않을 때는 지랫대를
이용해 들어보면 훨 문제 해결이 빨리 될 것이다. 지랫대는 무엇인가. 여태까지 당신이 살아 오면서 터득한 모든 경험이 도구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