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횃대 2005. 6. 13. 09:30


 

 

아무리 누추한 집이라도 군데군데 창이 있다는 건 얼마나 좋은 일입니까

며칠 전 끝난 <부모님 전상서>란 주말연속극을 거의 빠지지 않고 봤습죠.

보기드문 형제애, 부모사랑..이런 것도 좋았지만, 나는 그거 있잖아요 작은 창을 통해서 사람들이 그 창앞에서 이야기하고 다음  움직임으로 넘어가든 모습을 보여주었던 그게 젤 마음에 들었습니다

마치 절간 석등의 작은 구멍을 통해서 너머 대웅전의 풍경을 보는 듯한.

저는 절간에 가면 꼭 그렇게 풍경을 보는 버릇이 있어요.

아참, 대웅전 뒷마당에가서 산을 올려 보는 것은 빠지지 않고 하는 짓입죠.

 

매일 설거지와 청소를 끝내고 앞치마도 채 벗어놓지 않고 앉아서 들여다보는 컴퓨터 바로 뒤에는 닭장을 볼 수 있는 창이 있습죠. 거기를 통해서 느릅나무가 일년동안 어떻게 옷을 갈아입는지 몰래 안 보고 대놓고 다 보고 있습죠. 느릅나무 새 잎이 뾰족뾰족 나오면 어머님은 옛날에는 저 이파리는 따서 밀가리 바물바물 묻혀 쪄서 먹기도 했는데, 이젠 저것보다 더 좋은 것도 맛이 없으니 끌끌...이럼시롱 혀를 차시죠

 

그 느릅나무 아래 닭장이 있습죠. 죠나단수탉이 사는 그 곳.

비가 오는 날은 왠지 뭐든 그리고 싶잖습니까?

연필을 쥐면, 생각나는 풍경보다는 비가 뚝,뚝, 선혈처럼 날것으로 떨어지는 풍경을 그리고 싶은 게지요

늘 갈망을 채우지 못하는 능력이 비애스럽긴 하지만 까짓꺼 뭐 어떻습니까. 그냥 슥슥 그려놓는거예요. 빗방울의 흔적같은 것은 눈씻고 봐도 없습니다. 그러나 저렇게 한 장 그려놓고 <비가 많이 왔습니다>이렇게 한 줄 써놓으면 그림 속에 물기는 없어도 언제라도 저 그림을 보면 비가 온날 그린 그림이란걸 대번에 알 수 있습죠. 일테면 그림을 그려서 마음에 비오는 날의 정서를 각인시켜 놓는 것입죠. 이렇게 해 놓으면 비 오는 날 닭장 풍경이 훗날 아무리 기억에 스크레치를 가해도 끄떡 없다는 것입죠.  좀 벨란 여편넨가요? ㅎㅎㅎ

 

기억이란 그런 것입죠

작은 창을 통해 보던 티비 영상이 좋아서 나도 그렇게 사물을 한 번씩 봐주고, 그렇게 보는 시야 속에서 사물은 어떤 모습으로 내 가심패기에 들어오나. 그렇게 들어오는 사물을 나는 어떻게 출력해낼 수 있나...하는.

그래서 글자도 쓰고 그림도 그린답니다 헤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