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대포집 세째며느리
살구 익는 동네
황금횃대
2005. 6. 17. 12:52
우리집 유월은 참살구가 익어가는 계절.
이 집안 전설이 주저리주저리 열리는 동안
꽃이 피고, 꽃이 지고, 또 꽃이 피고 지고....
첫째 시고모님 태어나던 해, 첫딸은 살림 밑천이라 가마골 밭둑에는 벽오동을 심고
집 뒤안에는 살구나무를 심었다.
청주 오창으로 큰시고모님 시집 가서 또 한 그루의 살구나무로 꽃을 피우고 꽃이 지는 사이
세월은 여든을 넘기고 아흔을 바라본다.
사람의 세월도 상처 없기 어려우니 나문들 그러하지 않을까
세월의 열기와 한파로 나무도 제 살을 드러내놓는다. 단단하여 도무지 속을 보이지 않을 것 같은 외피를 허물고 속엣것을 칠성판 크기만하게 드러낸다. 꼬물닥 움직이는 작은 벌레와 개미들이 늙은 살구나무 속살을 간지래며 오르락내리락한다.
박하나무가 엉덩이 비비고 들어오면 조금 허리를 비켜준다. 사철나무 가지가 턱 밑을 차고 올라와도 태풍이 심한 날 제 팔을 비틀면서까지 사철나무를 안아준다
살구꽃 피고지고, 살구가 익어가는 동안,
할아버지는 아들을 낳고, 아들은 장가를 가서 또 아들을 낳고, 그 아들의 아들이 장마 쯤이면 어김없이 익어주는 살구를 주워먹는다.
아들과 딸을 낳아가며 소통하던 것들은 역사라 이름지어 흐르고 또 흐른다. 먼 먼 훗날, 그것들은 또 전설이 될거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