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대포집 세째며느리
단편
황금횃대
2005. 6. 29. 14:52
새벽 3시에는 많은 비가 쏟아졌다
장꽝 옆 공터에는 살구가 떨어져 솥뚜껑에 따당,따당 떨어지는 소리가 빗소리에 비명처럼 튀었다
딸아이는 책을 들고 붉은 눈으로 씨름을 한다
자거라, 내일 시험볼려면 지금 자야지
마지못해 책을 덮고 요대기로 돌아 눕는다
내가 끙 소리를 낸다
아침 삽짝을 열기도 전에 소를 가지러 왔다
두해 가까이 먹인 소를 오늘 농협정육코너에서 가져간다고
대문 두드리는 소리에 눈을 뜬다 그렇지..소를 가지러 온댔지.
소뿔에 줄을 걸어 소를 몰아낸다. 소가 제 움막에서 나가지 않으려 뻗댄다
눈물이 핑돈다
쇠죽도 살갑게 주지 않았으면서 놈이 도살장으로 간다니 속이 아프다
내 소가 아니니 어쩔 수도 없고
난자리 하나가 생겼다
남편은 점심 먹으러 와서 빈 외양간을 들여다본다
아침에 소가 실려나가는 걸 도와주었으면서도 들여다본다 뻔히 알면서
정이란 그런거다.
포도봉지 다 쌌으니 쪼뱅이 바쁠것 없겠네
왜요?
이제 슬슬 논에 가서 논 매라고.
.............
당신은 결혼을 할게 아니고 머슴을 하나 들일걸 잘못했네요
말꼬리가 얼음짱처럼 차가와진다
머슴이라니?
그렇게 일하다 하루 겨우 쉬는데 그게 배아퍼 논으로 일 보낼라하니 차라리 머슴을 들였다면
두 말 않고 갈거 아녀?
마누라의 송곳을 짐작했는지 입을 다문다
한 마디 더하면 싸움날 말투라는 걸 서방도 이제 낌새를 챈다
삶의 기미를 알아간다는 것은
말 한 마디 억양에 아침의 슬픔을 짐작해 내는 일이야
지금쯤...소는 어떻게 됐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