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횃대 2005. 7. 31. 09:03

수운은 1864년 3월 10일(양 4월 15)하오 2시경에 대구 남문 앞 개울가에 있는 관덕당(觀德堂, 아미산 동쪽)뜰에서 참형되었다. 41세의 나이로 대명률 제사편(大明律 祭祀編)금지사무사술조(禁止師巫術條, 一應 左道亂正之術)로 처형되었다. 즉 동학은 서양의 요사한 가르침을 그대로 옮겨 이름만 바꾼 사술(邪術)이며 서학과 다를 것이 없다는 죄목을 뒤집어씌워 참형시킨 것이다.

 

참형광경은 참혹하였다. 길다란 판자에 수운을 엎드려놓고 꽁꽁 묶은 다음 목 밑에 나무토막을 받쳐놓고 칼로 내리쳤다. 조선조 후기의 역적참경도(逆賊斬頃圖)를 보면 사형수를 형틀인 판자에 엎어 묶고 나서 상투머리를 풀어 그 끝을 끝으로 묶어 앞에 세워둔 장대에 달린 고리에 줄을 걸어 2명의 관원이 잡고 있다. 목이 떨어지면 잡아당겨 장대에 매달리게 한 것이다. 수운도 이런 식으로 처형하였다.(동학 1. 322쪽)

 

동학  - 삼암 표염삼지음

 

 

 

 

 

 

양력 사월 보름 오후 두시경..140여년전에도 4월의 햇살은 지금의 빛깔과 다르지 않았으리라.

관덕당 뜰...며칠 전 대구 가서 염매시장 바라 보았던 곳이 수운의 참형지란다.

그가 얘기해 준다. 나는 문득 아득해진다.

수운은 그날 형틀에 매달려 무슨 생각을 하였을까.

칼로 내리치기 직전의 그 한 생각이 무엇이였을까.

 

 

燈明水上無嫌隙 柱似枯形力有餘

등명수상무염극 주사고형역유여

 

혐의를 잡아내려 물 위에 등불을 밝혀보나 혐의할 틈새가 없도다. 기둥은 말라버린 모습이나 그 힘은 여전히 남아 있도다.

 

 

 

수운이 이 세상에 남긴 마지막 유시(遺詩).

읽는데 마음 한 끝이 한 없이 저려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