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둥을 세우자
사랑하는 사마천 당신에게
문정희
(투옥당한 패장(敗將)을 양심과 정의에 따라 변호하다가 남근(男根)을
잘리우는 치욕적인 궁형(宮刑)을
받고도 방대한 역사책 ‘사기’를
써서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규명해 낸 사나이를 위한 노래)
세상의 사나이들은 기둥
하나를
세우기 위해 산다
좀더 튼튼하고
좀더 당당하게
시대와 밤을 찌를 수 있는 기둥
그래서
그들은 개고기를 뜯어먹고
해구신을 고아먹고
산삼을 찾아
날마다 허둥거리며
붉은 눈을 번득인다
그런데 꼿꼿한 기둥을 자르고
천년을 얻은 사내가 있다
기둥에서 해방되어 비로소
사내가 된 사내가 있다
기둥으로 끌 수 없는
제 속의 눈
천년의 역사에다 댕겨놓은 방화범이 있다
썰물처럼
공허한 말들이
모두 빠져나간 후에도
오직 살아있는 그의 목소리
모래처럼 시간의 비늘이 쓸려간 자리에
큼지막하게
찍어놓은 그의 발자국을 본다
천년 후의 여자 하나
오래 잠 못 들게 하는
멋진 사나이가 여기 있다
우리집에도
저눔의 기둥을 세울라고 노력하는 한 남자가 있다.
<보약>편에서도 말했듯이
남자는 모름지게 가운데기둥이 발딱발딱 잘 서야
진정한 남자라고 얘기하는 사람이다.
한 밤중에 스포츠신문 한 귀튕이를 오려와
여편네 협박해서 보약을 함 먹어보자 했건만
지금 이만해도 너무 잘 서서 간프다고
여편네는 꿈쩍을 안한다.
그러나 기둥의 힘이
어찌 여편네의 기준으로 만족이 있냔말이지
어느 날, 재방송 생로병사의 비밀을 보는데
옳커니 마늘이닷!
그 때부터 남자는 마늘을 먹기 시작했다
그 옛날 마늘을 먹고 사람되길 원했던 호랑이와 곰 전설처럼
그도 마늘을 먹고 기둥을 세우기로했다.
부엌일이라면 손갑육갑도 까닥하지 않던 사람이
과도를 가져와 마늘을 비빔그릇가득 까놓기도 한다.
생으로도 먹어보고, 구워도 먹고, 된장에 박아도 먹고, 고추장에 찍어도 먹고.
사람이란게 앉으면 눕고 싶고
누으면 거시기 하고 싶다더니
마늘까기로 시작한 부엌일 도와 주는데 눈치를 긁고
여편네는 부엌일의 범위를 넓혀간다
마늘 굽는 옆에 고등어도 같이 뉘어 놓으면
밥상 차릴 동안 고등어도 돌려 눕히고
돌아 누운 고등의 등판이 굽히는 동안,
제가 먹을 숟가락도 찾아 놓는다
냉장고에서 물병도 가끔은 내 놓고
거기다가 기특하게 물컵도 식탁 위에 챙겨 놓는다
이 모든 사소한 작은 일들은
예전에는 진짜 여편네에게 다 시켜서 했다.
자다가도 약 먹을 일이 있으면
약 가져 와라 물 가져 와라, 약 먹다 물 한방울 흘리면
휴지 가져 와라, 방구석 딲아라..
그러던 남자가 기둥 하나 빡시게 세워보려고 맘 먹더니
기둥 뿐 아니라 습관도 고치고 있다.
아는가 남자여.
빡신 기둥으로 힘껏 여편네를 홍콩보내는 것도 좋지만
사소한 배려로 여편네를 감동시키는게
업겁의 윤회가 이루어져도
다시 그대를 만나고픈 간절한 소망이 된다는 걸.
아는가!
모르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