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을 닦다가..
몇 년전 걸레 빨아서 월남치매 입고 방 닦다가 뜬금없이 치마 속을 들여다보았는데
이런 생각이 들었다.
가랭이를 딱 벌리고
들여다 보면
한 눈에 보이는 내 삶
어디서 나고
어떻게
살다가
그렇게 가고 말...
내 삶이 한 눈에 다 보이는
슬프디 슬픈
눈동자같은..
가랭이
그런데 내가 아는 분의 블로그에 갔더니 이 시가 있다.
저 늙은
여자의
거웃 하나 없이 어두운 음부를
곁눈질한다
샤워기는 안중에도
없다
이따금 바가지로 물을 끼얹을
뿐
그때마다 목욕탕 바닥이 철퍼덕 철퍼덕
울어댄다
그녀의 삭정이 같은 몸엔 섬이 하나
있다
한 삶이 떨어져 나온 흔적과 또 다른 생을
잉태했던 곳
언제부턴가 그 아스라한 경계가 혹처럼
불거졌다
깊어진 주름에 가려 배꼽은 보이지
않는다
한때 삶의 오르가슴을 향해 부풀어 오르던
자궁은
이젠 캄캄한 주름의
계곡이다
저 주름들, 나무들이 나이테를
그려왔다
그 푸른 줄무늬 실핏줄처럼 온몸에 번질
때
주름은 비로소 옹송그려 깊어지는 법을 배웠을
것이다
중심으로 향할수록 점점 조밀해지는
등고선
기억하는가, 활화산처럼 타오르던 한 생애의
봉우리
그러나 이젠 고통의 분화구만 남은 잊혀진 섬
하나
보아라, 늙은 여자의 슬픈
민둥산
겹주름이 사방연속 무늬처럼
이어진
저 비리고 캄캄한
구멍이
나와 너 그리고 세상이 일어선
곳이다
<그녀의 바닥> 박옥순 2001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아마 나도 저 메모을 쓸 때가 2001년쯤 됐으리라
정작 방 닦으며 저 생각이 들때는 눈물이 뚝뚝 떨어져 발등에 떨어졌지만 방 닦고 난뒤에는 잊었다 그러나 시인은 그걸 잘 다듬어서 저렇게 잘 묶은 시 한 단 내 놓았다
부럽지만 나는 참 안되는 구석이다.